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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책] 헤드라이너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의 중심은 나!

세상 밖에서 주목받길 원한 청년들 분투기

기사입력 : 2023-02-24 08:07:15

‘헤드라이너’는 공연 등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주목받는 출연자를 말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각 분야의 헤드라이너를 꿈꿨던 적은 언제였을까. 백중 백은 ‘청년’이라 답할 것이다.

임국영 소설가의 소설집 ‘헤드라이너’는 총 8편의 소설로 구성돼 있다. 소설은 주로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중심 소재로 삼고 특유의 재치와 위트를 가득 채워 전개된다. 마치 지미 헨드릭스의 왼손에서 시작된 기타 리프처럼 말이다.


소설 ‘헤드라이너’는 이름난 록 페스티벌에 난입한 소년 밴드 ‘우드스톡’의 이야기다. 구성원인 로니, 빌리, 시드, 존은 애석하게도 모두 한국의 성과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다. 허세가 있는 이들은 ‘로커에게 일어나는 모든 폭거는 퍼포먼스’라는 신념 아래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의 공연에 뛰어들어 그들을 세상에 알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모한 계획에 착수하기 직전 모종의 이유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멤버들은 그날 밤 각자의 인생을 변화시킬만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임 소설가의 등단작인 ‘볼셰비키가 왔다’는 토사물에 목이 질식돼 죽은 오빠의 장례식에 오빠가 소속된 밴드 ‘볼셰비키’ 멤버들이 오면서 시작된다. ‘나’는 대놓고 불량스러운 이들을 통해 어릴 적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오빠의 삶의 조각을 발견해나간다. 그 끝은 처음으로 술에 취해서 하게 되는 강렬한 구토지만, 묘한 청량감과 개운함이 있다.

‘오토바이의 묘’는 지방 소도시에서 오토바이를 훔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이들에게 도난당해 이끌려 온 오토바이 ‘루피’의 시점에서 이끌어간다. 두 소년은 오토바이를 타며 서로에게 조금씩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루피 또한 맹목적으로 달리는 게 싫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오토바이 절도범을 잡기 위한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오고, 소년의 갈등은 극에 달하면서 루피의 삶도 가라앉는다.

임국영의 세상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 극도로 개인주의적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오이디푸스 등 신화의 조건을 모두 흡수한 성장소설의 구조를 가지지만, 성장한 등장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반항을 담고 있는 책은 더 나아가 소설 구조의 반란을 꾀한다.

‘악당에 관하여’는 임국영 소설가의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들이 응축돼 있어 소설집 전체를 이해하는데 단초가 되는 작품이다. 소설 속 편집자 A는 소설가 ‘나’에게 ‘성장 없는 성장’ 플롯이 소설의 패착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편집자와 싸운 후 ‘나’의 낯부끄럽게 도취된 자만의 뱉을 수 있는 독백은 소설집 곳곳에서 들리는 듯하다.

임국영 소설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청년들의 좌충우돌 분투기 속에서 독자도 어떤 기시감, 익숙함을 느끼길 바랐다. 우리는 어둡게 조명받고 싶어 했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아도 세상이 우리를 바라봐주길 원했다. 우리가 결국 조명 속으로 뛰어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명 밖 청년들의 이야기집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일이 조금은 더 괜찮아지길 바랄 뿐이다.

임국영 저, 창비, 1만5000원.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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