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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지속가능한 상생의 연금개혁을 희망하며- 이재수(행정학 박사·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기사입력 : 2023-02-26 19:23:55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개인의 마음도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온갖 사람이 얽혀 사는 사회에서의 마찰은 너무나 당연하고 불가피하다. 적당한 견제와 균형은 사회 발전에 유익하지만, 칭칭 휘감은 칡덩굴이 나무를 고사시키듯 대립과 반목이 격화되면 공동체는 응집력을 잃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현대사회에서는 갈등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예술가적인 창의성과 섬세한 지혜가 중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안녕한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는 융성하며 삶은 윤택하다. 하지만 짙게 드리운 그림자도 없지 않다. 아마도 세대 간, 계층 간, 성별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중 아닐까. 그 화두의 중심에 국민연금 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눈 딱 감고 외면하고 싶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회색 코뿔소’가 우리 앞으로 돌진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연금제도는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인 ‘비스마르크’가 은퇴하는 노동자를 위해 1889년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1988년에 도입했고 그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가입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2250만 명, 수급자는 642만 명, 기금 적립금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하지만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는 국민연금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후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연금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재정은 안정적인지, 급여 수준은 적정한지를 말이다.

하지만 앞날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중이다. 외국에서도 깜짝 놀란 합계 출산율 0.78명, 65세 이상 노인인구 900만 명 돌파, 2025년에 초고령사회 진입 예상. OECD 평균보다 3배가량 높은 노인빈곤율, 이러한 수치들은 갈수록 길어지는 노년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정부는 5년 주기로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올해가 다섯 번째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세대 간 공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노후 소득보장을 강화하여 세대 간 상생하는 개혁안 마련’을 연금개혁의 목표로 설정했다. 국회는 작년 7월에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올 4월 말까지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안 마련을 위해 연금전문가 중심의 민간자문위원회가 활발하게 논의하는 중이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다수의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겠다는 노력은 진일보한 갈등 조정장치로 평가된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만든 사회보험제도의 하나로 연금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연금제도 운영에는 다소의 변화가 발생하겠지만, 국가가 연금을 반드시 지급한다는 건 변함없다. 오래전부터 적립기금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부과방식 전환을 통해서 무리 없이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가 되었다.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세대를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 대안이 마련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그리하여 조만간 맞이할 초고령사회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세대가 희망의 이야기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재수(행정학 박사·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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