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남 예술청년 코로나 분투기 (1) 미술청년편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알바’… 일 마치면 꿈 그렸다

통장 잔고 몇천원… 잔인했던 코로나

기사입력 : 2023-03-01 20:46:53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 사람들의 삶에 타격을 입혔다. 예술가들도 그중 하나다.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던 전시와 공연들의 일정이 뚝 끊겨 설 곳을 잃었고, 예술인들이 해오던 수업 등도 차질을 빚어 생계가 막막한 이들도 생겨났다. 우리 지역 예술인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을 이어갔을까. 활동하고 있는 도내 청년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2년 국내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도 역대 최초로 미술품 유통액이 1조를 넘겨 1조377억원을 달성했다. 2021년 7563억원 대비 37% 넘는 성장이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공연장과 미술관이 문을 닫았지만 MZ세대의 관심과 재테크 대상으로 주목받아 미술시장은 호황을 맞았다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도내 미술 분야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달 9일 창원 오누이북앤샵에서 열린 ‘사림153’ 모임에 참가한 장건율(31), 박준우(31), 방상환(32) 등 청년작가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들은 평소에도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아 여러 일을 병행하며, 코로나 상황 때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기를 넘겨냈다고 밝혔다. 직장을 얻거나, 예술인 지원사업에 참여하거나, 작가들의 정주를 해결하며 작품에 집중하도록 돕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달 9일 오후 창원 오누이북앤샵에서 지역청년작가모임인 ‘사림153’ 소속 작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방상환·장건율·박준우·박지은·허소운·천정민·김택기 작가.
지난달 9일 오후 창원 오누이북앤샵에서 지역청년작가모임인 ‘사림153’ 소속 작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방상환·장건율·박준우·박지은·허소운·천정민·김택기 작가.

◇코로나 팬데믹에서 살아남기

-장건율 : 코로나가 진짜 심할 때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창원대학교 앞 한 카페 지하에 있는 갤러리에서 열었는데 그때 사람이 정말 없더라고요. 그 카페가 장사가 잘되는 곳이어서 드나드는 손님들도 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소를 정한 건데 영업 제한이 걸려 거의 음료를 들고만 가셨어요. 1월이라 추운 지하 히터도 없는 곳에서 전시장을 지켰고, 지인 말고는 거의 손님이 없어 전시를 해도 어떠한 피드백이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어요. 원래도 관람하는 분들이 없긴 했지만 더 없었죠.

코로나 이후에 재료값도 매우 올랐어요. 기본적으로 20~30%가 비싸졌고, 물류가 묶여 재료 수급도 잘 안 됐거든요. 물건이 없는 거죠. 재료를 아끼면 작품에서 티가 확 나서 아끼기도 어려운데 말이에요.

저는 평소에는 작품 파는 걸 제외하고는 필름카메라 클래스나 드로잉 클래스, 고등학교 수업 등을 병행해나가면서 작품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정말 개인마다 성향에 맞게 일하면서 작업을 하거든요. 준우 작가처럼 1년 동안 바짝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일, 부업 등과 병행이 괜찮냐 안 괜찮냐를 따질 수가 없어요. 그냥 현실이어서 할 수밖에 없거든요.

-박준우 : 저는 2020년 2월 코로나로 졸업식이 취소되고, 행동에 제약을 두는 거리두기를 할 즈음부터 쿠팡에서 1년간 일했어요.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했으니까 돈을 벌었죠. 그래도 쿠팡일을 하면서도 차세대 유망인들을 지원하는 데 선정돼 그해 11월 개인전도 열었어요. 경남에 유망 예술인이라는데 제가 또 기대를 저버릴 수 없잖아요? 하하. 예술인 지원사업들은 생활에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쿠팡에서 일하고 있는 박준우 작가.
쿠팡에서 일하고 있는 박준우 작가.

작업을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갖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그 유명한 마르셸 뒤샹도 자기 직업이 있었대요. 자기 작업에 마음이 뜨면 일만 하면 되는 건데 다들 작업을 하고 싶어서 작업을 붙잡고 있는 거니까요. (병행할 수밖에 없죠.)

-방상환 : 저는 일이 안들어오던 2019~ 2020년에 6개월 정도 이마트 창원중앙점 수산물 매장에서 일을 했어요. 힘든 것보다는 확실히 작업시간이 줄어들더라고요. 당시에 일을 마치고도 밤에 작업을 했는데 점점 일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나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5일을 일하면서 작업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죠. 이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고물상에서도 일했어요. 일주일에 3일만 오면 된다고 하고, 아무래도 시간이 좀 자유로워서 일하기가 괜찮았는데 아쉽게 그만두게 됐네요.

신기하게 통장 잔고가 간당간당하다 싶으면 그때마다 한 번씩 사진 찍는 일 같은 게 들어오더라고요. 얼마 전에 몇천 원만 남았다가 갑자기 몇만 원이 생겨가지고 다행인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작품이 팔리거나 일이 들어오면) 크게 한 번 들어오곤 하죠.

-장건율 : 작가 대부분이 통장 잔고를 안정적이게 해놓진 않고 죽을랑 말랑할 때 20만~30만원 갖고는 ‘이번달은 괜찮다’ 이러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의 통장을 생각하면 안되고요.

◇경남미술도 호황일까?

-장건율 : 호황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보다 조금 판매가 된다는 수준이죠. 왜냐하면 젊은 작가들 작품이 팔린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림을 판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호황기라고 하지만 작업의 형태 같은 것들이 판매가 용이하거나 대중적인 이미지의 작업들 위주로만 판매가 되는 것 같아요.

-박준우 : 맞아요. 저도 작년에 거의 처음 작품을 팔았어요. 사실은 꿈같은 얘기였는데 요즘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림이 좀 팔리려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죠. 그렇지만 이걸 호황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코로나가 끝난 이제는 앞으로 있을 큰 아트페어 몇 개에서 이름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그대로 팔리는데 신진작가들이 안 팔리고 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다시 불황인 거라고 볼 수도 있고요.

◇미술청년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장건율 : 청년작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여겼어요. 진짜 이 지역 청년인, 작가가 모여 있는 모임이요. 직접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희 선배들이 만들었던 미술비평 모임 ‘사림153’을 이어받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고, 11명의 청년작가가 모였어요. 이 중에서 저를 포함한 박준우, 방상환, 김택기 작가가 선배 세대이고 나머지가 후배 세대죠.

-방상환 : 정식 화이트 큐브 같은 전시공간이 부족해요. 지역들이 다 비슷하게 갖고 있는 문제이긴 한데,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 말고는 우리가 대여를 하려고 해도 거의 없어요. 특히 신진작가들에게는 깨끗하고 층고가 높은 전시공간을 쓰기가 쉽지 않죠. 창원에는 성산아트홀이 있지만 청년작가들 전시가 쉽지 않거든요. 많은 작가들, 예술 단체들이 지원을 하고 심사를 받는데 매우 치열해요. 되기가 어렵죠.

-장건율 : 맞아요. 특히 작가들의 지원 사업의 신청 기간과 전시 기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앞으로 청년 작가,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좋은 공간이 늘었으면 합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