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외길 50년… 꿈 향한 마지막 여정 시작합니다
77세 라상호 사진가의 꿈의 여정 ① 여행 준비
반백 년을 사진에 쏟아부은 77살 라상호 사진가가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77살을 맞은 동갑내기 경남신문에 이 여행기를 선물로 보내오기로 했다.
안주하지 말고, 꿈과 희망, 사회의 정의를 위해 달려보라는 메시지와도 같을 것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국경, 사람들을 마주할 것이지만 그가 머릿속에 그려온 사진을 바라보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가 실시간 만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즐기며, 그의 꿈의 여정을 같이 밟아나가 보려 한다.

2008년 두 번째 사진집 ‘붓다의 나라- 미얀마’에 실린 미얀마 뮈아우 불상.
사진 외길 인생 50여년, 나는 사진을 좋아했던 젊은 날을 소환한다. 서울 명동 뒷골목, 중국인 상가의 한 작은 서점에서 구한 핸드북이 내 꿈의 시작이었다. 어느 일본인이 체험한 글과 사진이 담긴 낡은 핸드북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과 장엄한 모아이 석상이 살아있는 칠레 이스터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실로 놀라운 사진을 보며 내용을 알기 위해 일본어를 독학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 책을 본 이후 사진작업을 시작하며 석물에 심취해 석건축물 석탑과 불상에 몰입해 1970년부터 경주 남산을 헤아릴 수 없이 오르내리며 2년여의 나날을 보냈다. 그때부터 전국 산과 바다, 들을 걷고 또 걸으며 떠돌듯 지냈다.
이즈음 나는 ‘세계문화유적 사진집 다섯 권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꿈만 같은 일이었기에. 그 이후로 사진 하나만을 바라본 외길 인생은 질곡의 연속이었다.
격랑의 시절, 나는 새로운 삶을 위해 1971년 6월, 마산에 정착해 2년여의 고뇌 끝에 사진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 당시 마산 YWCA에서 사진반을 지도했고 흑백TV 시절 마산MBC TV에서 사진강의도 했다.
‘라상호사진연구소’라는 무거운 간판을 메고 일곱 번인가를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다 대우백화점(현 롯데백화점 마산점)에 안착해 15년여를 지낸 후 지금은 원도심재생1번지 창동예술촌 ‘창동갤러리’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 오기까지 잊을 수 없었던 많은 일과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로서 갖고 있는 자긍심이 남다르다.
지금까지의 작업활동에서 잊을 수 없었던 기적과 같은 일은 ‘당신의 젊은 날의 꿈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라는 국제라이온스 문화재단의 문화사절에 뽑혀 캄보디아 사진촬영 지원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 지원금으로 ‘미래 성역도시-앙코르, 캄보디아 사진 작업’을 위해 6개월을 캄보디아에 머무를 수 있었다. 신비로운 씨엠렛의 광활하고 장엄한 앙코르의 유적군은 시간을 거꾸로 세우는 작업이었다. 프놈펜의 석양이 내리는 메콩강을 잊을 수 없다. 1999년, 나의 다섯 권의 세계문화유적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라상호 사진가가 촬영한 운문사. '운문세상'이라는 사진집으로 엮었다.

라상호 사진가가 촬영한 운문사. '운문세상'이라는 사진집으로 엮었다.
2006년 첫 번째 ‘미래성벽도시-앙코르 사진집’을 발간하고 사진전을 열었으며, 2008년 두 번째 ‘붓다의 나라-미얀마’ 사진집을, 2014년 세 번째로 한국불교 문화유산인 청도 운문사를 기록해 ‘운문세상’을 발간했다. 또한 2018년 네 번째 ‘영혼이 쉬어 가는 곳-히말라야, 신들이 사는 나라 네팔’ 사진전을 개최했고, 한국불교문화진흥원 발간 한국의 명사찰 단행본 시리즈 중 10권의 사진작업을 진행했다.
2023년 2월 20일, 마지막 다섯 번째의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페루 잉카 문명과 칠레의 장엄한 모아이 석상, 남극 빙하를 찾아 떠난다. 내 나이 일흔이 훨씬 넘어 긴 여정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힘겨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힘들다고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가 선택한 것 중에서 제일 후회할 일들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통과 연락도 어렵고, 비행기 예약마저 막막한 이번 여행은 다른 때보다 몇 배로 더 힘이 들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할 것을 안다. 어려울수록 이루고 난 뒤의 성취가 클 것이라 믿는다.

라상호 사진가.
먼 길 위를 헤맬 나의 무거운 어깨와 안녕을 걱정하는 가족들과 이웃의 염려를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잘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해낼 수 있게 해 주시리라 믿고 있다. 나는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이번 여정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 두 어깨에 얹혀질 무거운 존재의 이유-카메라들이 있지만 무거운 마음의 짐들도 내려놓았다.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 ‘여행의 신’이 나의 무거운 두 어깨 위에 내려앉아 평안함을 이끌어 줄 것을 믿는다. 50여년의 사진 외길 인생을 지켜왔듯이 이번에도 내 뜻을 지켜주시리라.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먼 길을 떠난다. 좋은 생각과 행복한 꿈을 되뇌며 말이다. 곧 남극으로 향하는 크루즈의 제일 높은 갑판 위에서 계속 카메라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창동갤러리 관장
정리=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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