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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경남 의료 인프라 이대로 괜찮은가 (중) 원인-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의료수요 느는데 의사 태부족… 2050년 수급 차이 ‘전국 최고’

2021년 도내 의대 정원 경상국립대 76명뿐

기사입력 : 2023-03-09 21:12:46

‘지방소멸은 당면한 사회문제로, 지역 쇠락과 의료인프라 붕괴는 상호작용하며 악순환 관계에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의 이슈 보고서에서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붕괴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민간의료기관 중심으로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한국 의료공급체계에서는 인구가 작은 지역의 경우 의료기관과 의료인력이 과소 공급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인력수급 부족 문제는 비수도권의 지역소멸지역의 응급·중증진료 분야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경남의 경우 의료 수요 대비 공급 부족 현상이 해마다 늘어 2050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차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2021년 기준 경남의 의대 정원은 경상국립대 76명에 그친다. 전국 40개 대학 정원 3058명(의과대 40개소 기준)의 2.5% 수준이다. 전국 16개 시도(세종 제외)에서 12번째로 적은 수다. 경남의 인구 1만 명당 의대 정원 수 현황 역시 0.23명에 그쳐 전국 16개 시도 중 14번째로 낮게 나타났다. 반면 광주(1.74명)·강원(1.73명)·전북(1.31명)·부산(1.02명)·경북(0.63명)이다.


경남연구원 이언상 연구위원은 “인구 1만명당 의대정원이 부족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지역인재가 타 지역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고, 타 지역으로부터 인재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남의 의료 서비스 수요는 해마다 크게 증가해 2050년 기준 전국에서 수요와 공급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경민 연세대학생건강공제회 이사장이 ‘경남도 보건공공의료 심포지엄’에서 공개한 국내 지역별 의사인력 수요 분석자료에 따르면 경남에 필요한 의사수요는 2020년 1만910명에서 2030년 1만4612명, 2040년 1만8756명, 2050년 2만724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남의 의사 수급 추계는 2020년 3917명, 2030년 4756명, 2040년 5236명, 2050년 6082명으로 수요의 3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민 이사장은 “경남의 경우 전국 대비 수급차이가 가장 높게 예상된다”며 “지역별 수급 불균형에 따른 의료 접근성은 과잉 의료비 지출을 야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지역을 떠나는 의사들= 경남의 의사 배출 정원이 타시도 대비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가운데 이들조차도 절반 이상 경남을 떠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도에 따르면 경상국립대 의대 졸업생의 지역 정주율은 42% 수준에 그친다. 절반 이상이 부산이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경상대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률 역시 46%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동아대는 78%, 부산대는 64%로 높은 비율로 지역인재를 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정부의 지방대학 의대 정원의 지역인재 전형 선발 확대 정책으로 경상대는 2023년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59.5%로 늘렸지만, 이 역시 부산대(80.0%), 동아대(78.4%) 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도내 수련의 부족도 의사들의 지역 정주율에 영향을 미친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가 발표한 전공의 정원은 인턴 3258명, 레지던트 3465명이지만, 경남의 의과대 졸업 후 인턴 정원은 126명으로 3.9% 수준에 그친다. 경남의 인구 만 명당 인턴 정원도 0.38명으로 전국 0.63명보다 적다. 서울은 1.19명, 대전은 1.03명, 대구는 0.94명, 광주는 0.82명, 부산은 0.78명으로 경남의 2배 수준이다.

더군다나 최근 유명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중심 분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경남의 의료인력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앙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학병원 설립과 달리 분원설립은 지자체장이 인허가권을 갖고 있다.

도내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지역에서 일 잘하는 40대 의사들이 서울에 자리가 날 때마다 나가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정주여건과 인센티브 등을 고려하면 말릴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인데도 수도권에 또다시 수 천개 베드가 생긴다면 경남에서는 구할 의사 수요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정부가 2020년 의료취약지역 시·군·구의사회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타 지역 거주 이유로 자녀 등에 대한 교육(73%)이 1위, 거주 여건(15%) 문제가 2위로 꼽혔다. 근무 지역과 거주지역과의 거리가 30km 이상 되는 비율이 62%에 달했다. 의료취약지역에 근무하는 의료인력의 71%가 의료기관이 위치한 근무 지역이 아닌 다른 시·도나 시·군·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 정책의 한계= 지역소멸과 의료인력 부족에 따른 지역 공공의료 붕괴는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와 경남의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정책은 미흡한 수준이다.

경남도에는 현재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전담부서나 인력이 없다. 도청 내 공공의료 정책담당, 감염병 공공보건담당, 식품의약과 의료응급담당, 가족지원관 분만산부인과 담당 등 4개 과에서 공공의료와 의사인력 관련 정책을 각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의과대학 설치 TF를 운영하면서 의료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있지만, 전담 인력이 없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경남뿐만이 아니라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상황이다.

지역 공공의료 인력에 대한 재정적 지원 등 인센티브도 부족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의 지방의료원 지방자치단체 예산지워 현황을 살펴보면 마산의료원의 지자체 지원 예산은 31억원으로 인근 부산의료원(112억)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경기의료원은 369억원, 서울 의료원 168억원, 인천의료원 149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정부와 의사 직능단체의 갈등으로 대안을 모색하지 못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국내 의사 정원은 2006년부터 18년째 연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가 올해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를 다시 추진하고 있지만, 의사협회의 반발을 넘어설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김영수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 책임연구원은 “지역의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의 가장 큰 원인은 의사정원 부족이지만, 경남에서도 공공의료 지원과 의사인력 양성 및 정주에 대해 다소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전국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특정 지자체의 지원이 늘어나면 또 다른 지역의 의료인력이 유출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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