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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 라상호 사진가의 꿈의 여정 ⑤ 우유니 사막에 뜬 무지개

소금사막과 구름 사이 걸린 ‘환희의 무지개’ 한 컷

기사입력 : 2023-03-28 11:25:04
무지개가 뜬 우유니 소금사막
무지개가 뜬 우유니 소금사막
해질 무렵의 우유니 소금사막.
해질 무렵의 우유니 소금사막.

3월14일

볼리비아는 남미여행 중에 포기를 생각한 곳이었다. 입국수속이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포기하려고 맘먹은 때, 출발 30여분 전에 극적으로 입국수속이 허락됐다. 카메라백의 무게와 손에 드는 짐을 재는 데부터 심상치 않았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찾아 떠나는 길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여정인가 하고도 생각했지만 다행히 계획대로 산타크루즈에 당도했다. 산타크루즈 비루비루 공항에 내리니 내 벗의 지인이 30여명의 현지 학생들이 환영 현수막을 걸어놓고 환영 합창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단했던 입국 여정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1시간여 가야하는 작은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내 벗의 지인이 선교사업을 하고 있는 Patuju라는 교회가 있는 오지마을로 가는 것이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다 낡은 버스에 합승해 찾은 작은 교회. 원종록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학창시절 강원도 황지리를 소환하게 됐다. 그곳에서 보낸 젊은 시절의 삶은 나의 비밀보자기 속의 이야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 목사는 먼 곳에서 온 나를 위해 그의 따스한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저녁상도 직접 해주셨다. 송구할 뿐이다.

볼리비아 오지마을에서 교회를 하고 계신 원종록 목사님과 현지 학생들이 환영마중을 나와주셔서 큰 응원을 받았다.
볼리비아 오지마을에서 교회를 하고 계신 원종록 목사님과 현지 학생들이 환영마중을 나와주셔서 큰 응원을 받았다.
산타크루즈 대성당.
산타크루즈 대성당.

우유니 사막 오가는 길에서 힘든 나를 달래준 멋진 협곡들.
우유니 사막 오가는 길에서 힘든 나를 달래준 멋진 협곡들.

3월15일

우유니 소금사막을 찾아 떠나는 길이 녹록지 않다. 새벽 4시부터 산타크루즈에서 수쿠레 공항까지 1시간, 수쿠레에서 택시로 포토시까지 3시간, 거기서 또 택시로 우유니까지 4시간. 저녁노을이 질 무렵 숙소에 닿았다. 먼길 포토시에서는 소낙비가 내리더니 해발 3000미터 지대라 찬기운이 몸을 감싸고 한기마저 느꼈으나 그보다 자연 그대로의 협곡과 산하의 아름다움이 먼저여서 감상에 푹 빠졌다. 높은 고갯길을 서커스마냥 아찔하게 넘어오다보니 우유니는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3월16일

우유니 마을의 첫 인상은 서부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건맨이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풍광이었다. 황량함이 감도는, 이상한 마을이었다. 비어있는 집 같기도 하고, 삶이 깃든 것 같기도 한데 무언거 허전함이 느껴졌다. 낡은 택시들도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들 가고 소금사막을 찾아온 이방인들이 서성이는 거리, 나도 그 속에 있다. 소금사막은 무엇이 되어 나를 만나줄까?

우유니 사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이국적인 선인장들.
우유니 사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이국적인 선인장들.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에 떠 있는 물고기섬. 마산 앞바다의 돝섬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에 떠 있는 물고기섬. 마산 앞바다의 돝섬이 떠오르기도 했다.

3월17일

택시는 손님을 태우고 나서야 주유소를 찾아간다. 그것도 주유소를 두어곳 돌아서 주유를 하고 또 덜컹거리며 달리기를 1시간여만에 또다른 여행객을 태워야 한단다. 어쩔 도리가 없이 그를 따라 오후 3시께쯤 소금사막에 닿았다.

사방이 수평선이다. 아주 먼곳에 가지런히 자리한 조그만 섬들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자리에 있다. 나는 배운다. 자연은 있는 곳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각각 제 생각으로 자연을 저울질한다. 황량한 들판 같은 우유니는 소금사막이 있어 존재하는가 보다. 소금사막 한가운데에 물고기 섬도 만났다. 마산 앞바다 가운데 떠 있는 돝섬이 생각났는데, 이 물고기섬에서 자라는 처음 보는 키 큰 선인장 군락지가 신비롭다. 신기루같은 곳이다.

이 신비로움을 좇아 당도한 나포함 많은 사람들 덕에 소금사막은 장날 같다. 지금의 시기로 말할 것 같으면 ‘진해 벚꽃장’. 이곳저곳에서 인증사진 촬영에 바쁘다. 별의별 포즈를 다 취한다. 사진사는 목청껏 소리 높여 포즈를 요구한다. 이 고요함과 어울리지 않는 난장판 같기도 하다. 좋은 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또 한 번 스친다. 그냥 조용히 자연 그대로의 사막을 보고 싶다.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내가 바쁠 시간이다. 소금사막 위에 물이 잠긴 곳을 찾을 시작이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아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고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다 됐을 즈음, 일곱색 무지개가 구름과 소금사막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매번 마음을 닫으려 할 때 무지개가 뜬다. 이런 무지개는 자주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마음을 풀고 또다시 한 걸음 나아가라는 뜻일까. 지난날 에베레스트 영봉에서 구름띠에 번지던 무지개도, 이번 여행의 험난한 크루즈 갑판 위에서 만났던 무지개도 떠오른다. 무지개로 시간들과 장면이 이어진다. 기쁨이요, 환희이다. 이 한 컷이면 또 어떠하랴!

내 발길을 붙잡은 노악사.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도 정성을 다한 그의 솔베이지송 연주에 감동했다.
내 발길을 붙잡은 노악사.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도 정성을 다한 그의 솔베이지송 연주에 감동했다.
우유니 사막 물고기섬에 키 큰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다.
우유니 사막 물고기섬에 키 큰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다.

3월18일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오는 데까지 힘들었던 그 길을 다시 시작했다. 산간의 선인장과 아름다운 협곡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오늘은 원 목사님이 몬테로(Montero) 광장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해왔다는 노숙자 점심봉사에 참여했다. 다른 이를 위한 봉사, 소외된 자를 위한 위로와 정성에 가슴이 뭉클했다.

잠깐 시간을 내어 대성당을 비롯한 시내를 돌아보는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바이올린의 선율이 들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회랑 한 편에 노악사의 솔베이지 송이었다.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만 같은 노악사는 연주에 정성을 다했다. 그 자리에 한참을 지키다 제법 큰 성의를 표하고 돌아왔다. 오늘밤은 노악사가 선물해준 선율로 잠을 청할 수 있겠다.

사람을 피해 찍은, 하늘을 그대로 비춘 우유니 사막
사람을 피해 찍은, 하늘을 그대로 비춘 우유니 사막
원종록 목사님이 몬테로(Montero) 광장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해왔다는 노숙자 점심봉사에 참여했다.
원종록 목사님이 몬테로(Montero) 광장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해왔다는 노숙자 점심봉사에 참여했다.

3월19일

오늘은 주일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사진여행을 하면 요일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볼리비아에서는 이번주가 아버지를 위한 날인 파파데이(Papa day)란다. 여러 행사 중에서도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이 아버지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행사가 감동이었다. 내일이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잉카 유적을 만나러 페루 푸스코로 떠나는 날이다. 마추픽추는 나를 어떻게 반겨줄지 기대된다.

우유니 사막 오가는 길에서 만난 동물들.
우유니 사막 오가는 길에서 만난 동물들.
라상호 사진가.
라상호 사진가.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창동갤러리 관장

정리=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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