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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통영 한산도 홍보대사 한빈 가수 겸 작곡가

“소멸하는 섬에 웃음·행복… 20여년 노래 봉사, 나는 행복 전도사”

기사입력 : 2023-04-26 21:06:11

2001년 진주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첫 봉사
요양병원·정신병원 돌며 행복한 시간 선물
이웃들과 아픔 나누고 희망 노래하면 행복


중학생 때 음악 접해 고교 시절도 밴드부
졸업 후 서울패밀리 그룹 드러머로 활동
버스킹 모금액으로 어려운 학생에 장학금


지난 24일 거제시 능포동 장승포농협 강당. 한빈씨의 주부노래교실이 한창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100여석을 가득 채운 강당에는 한빈씨의 전자기타 반주에 맞춰 노랫소리가 흥겹게 이어졌다. 한빈씨의 재치 있는 입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작곡가 겸 가수 한빈(56)씨는 20여년을 노래로 봉사하며 살았다.

피아노 앞에 앉은 한빈 작곡가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 앞에 앉은 한빈 작곡가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1년 고향인 진주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의 홍보대사를 맡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1인당 500여만원이 드는 심장병 수술비를 지원하기 위해 어느 자리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마이크를 잡았어요. 그 노력의 결실로 수술 후 건강해진 아이를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한빈씨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노래를 통한 봉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노인요양원, 정신병원 등을 다니며 MC로, 때로는 가수로 마이크를 잡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버스킹을 통해 CD를 팔아 모금한 금액으로 동사무소로부터 추천받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수시로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웃음과 행복이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함께 노래하며 웃다 보면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을 얻잖아요.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이웃들과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됐습니다.”

전자기타를 메고 노래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한빈씨.
전자기타를 메고 노래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한빈씨.

한빈 작곡가는 어릴 때부터 노래가 좋고 음악에 끌렸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때 합창부에서 음악을 접했고,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빠졌어요. 졸업 후에는 서울패밀리 그룹에서 드러머로 생활했었죠.”

하지만 음악으로 먹고살기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수세미를 팔기도 하고, 구두도 닦고, 밤에는 야간업소에서 일하고 낮에는 탑차 운전을 하는 등 어렵게 생활해야 했다.

“서울에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어요. 이게 맞나 싶어 고향으로 내려왔죠. 하지만 음악의 꿈은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고향에 내려와 아내와 진주교 앞을 지나는데 청년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어요. ‘사모곡’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더라고요. 음악을 놓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죠.”

한빈씨는 진주를 비롯해 경남 전역을 누비며 통기타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도 하고, 방송 출연과 노래교실 등을 하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또 틈이 날 때마다 작곡도 하고 노래 봉사에도 열심히 매달렸다.

최근 들어 이런 그의 노력이 서서히 꽃을 피우고 있다. 유명 가수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부르면서 작곡가로서도 서서히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조영남의 ‘삼팔광땡’, 소명의 ‘최고의 사랑’, 김보성의 ‘의리에 산다’, 청임의 ‘불멸의 영웅 이순신’ 등이 그가 작곡한 노래들이다. 특히 청학동 트로트 요정 김다현이 낸 신곡 앨범 중 ‘어즈버’, ‘장날이 좋다’, ‘꽃길만’, ‘아, 하동이여’, ‘무등산’ 등 5곡이 작곡가 한빈씨의 노래로 채워졌다.

“‘장날이 좋다’는 정겨운 장날 장면을 담은 흥겨운 노랩니다. ‘어즈버’는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고요. 주변에서도 반응이 좋아 기대를 하고 있어요.”

한빈씨는 지난 14일 통영시 한산도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장승포 농협·한산도 경로당서 노래 봉사
조영남·김다현·김보성·소명·청임 등
유명 가수들 작곡가로도 이름 알려


딸 송희는 SBS 16기 공채 개그맨
사위는 개그맨 출신 유튜버 안진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잘 됐으면


한산도가 고향인 조재환 지인의 권유로, 조재환·청임과 함께 ‘소멸하고 있는 섬 주민들에게 에너지를 주자’는 뜻에 의기투합해 올해 초부터 한 달에 한 번 한산도를 찾아 노래 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또 ‘불멸의 영웅 이순신’, ‘백의종군 천리길’ 등 성웅 이순신을 주제로 한 노래를 작곡한 것도 인연이 됐다. 한씨는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부른 가수 청임과 함께 한산면 해맞이 행사를 시작으로 한산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최하는 ‘찾아가는 음악회’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쳤다.

“여객선 타고 한산도에 도착하면 마을 잔치가 벌어져요. 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 모시고 노래 봉사를 하는데, 부녀회에서 음식도 하고, 면장님과 시의원님들도 오시고, 정말 흥나는 하루를 보내고 오죠.”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한빈씨.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한빈씨.

한산도 노래 봉사는 오전과 오후 한 마을씩 펼쳐진다. 주요 프로그램은 웃음치료, 레크리에이션, 노래공연 등이다. 노래 봉사단이 한산도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마을 어르신들까지 공연이 진행되는 마을을 찾는다.

“40~50명의 어르신들이 모이십니다. 표정이 얼마나 순수하고 밝은지 몰라요. 내 부모 같아 눈물이 날 때도 많아요. 남들은 재능기부, 노래 봉사라고 하는데 오히려 제가 건강과 활력을 찾아갑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몰라요. 한 달에 한 번 공연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예요.”

한빈씨는 한산도를 방문하며 젊은이가 없는 것을 보고 ‘섬 소멸’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한산도를 주제로 한 노래를 한산도 공식 홍보송으로 발표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한산도 주민들도 한빈씨의 노래가 섬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산도 노래 봉사를 하며 만든 곡 ‘한산도의 추억’을 김다현 양이 부르는 것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로 한산도가 좀 더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어르신들만 있는 섬에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섬이 되기를 바라며 곡을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냐고 묻자 한씨는 딸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비쳤다. 2016년 SBS 16기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한송희가 한빈씨의 딸이다. 한송희는 SBS 11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유튜브 채널 ‘동네놈들’로 활동하고 있는 안진호와 가정을 이뤘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어릴 때부터 보여준 끼며, 유튜브 채널 ‘동네놈들’ 구독자수와 조회수 등 팔불출 아빠의 딸 자랑, 사위 자랑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개그우먼으로 활동하고 있는 딸아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죠. 제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끼가 있더라고요. 사위도 개그맨인데 걱정 없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잘됐으면 좋죠.”

글·사진=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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