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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판다 외교- 이지혜(정치부 기자)

기사입력 : 2023-05-24 19:26:25

커다란 몸집에 까만 눈과 귀가 마치 커다란 인형 같다. 푹 퍼져 대나무를 씹다가도 금새 신나 미끄럼틀을 타고 물장구를 치는 장난기가 귀여운,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다. 지난 2016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한국으로 보내 에버랜드에 자리잡은 한 쌍의 판다가 낳은 ‘용인 푸씨’는 한국인 사육사와의 케미를 자랑하지만 2025년이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유권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동물외교’는 주로 멸종위기인 희귀동물과 같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을 외교특사로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 외교 형태보다 부드럽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1972년 중국이 판다를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국교정상화를 기념해 일본에도 보내면서 판다는 동물외교의 상징이 됐다. 현재 세계 19개국에 66마리가 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귀여운 외교특사들의 생은 묘하게 양국 외교의 양상을 따른다. 지난달 태국 ‘린후이’의 죽음에는 양국 각계인사가 함께 애도했고, 중국은 곧장 새 판다를 보내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2월 미국 ‘러러’의 죽음은 관리 소홀 지적과 나머지 판다 송환 등으로 얼룩지며 양국의 관계 변화를 떠올리게 했다. 대만-중국 화해의 상징이던 ‘퇀퇀’ 역시 최근 투병 끝에 죽었고 이는 양국 정치권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과거 고려나 조선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동물외교는 오래된 관행이다. 그러나 국가간 교류 방법이 다양해진 시대에 외교의 도구가 ‘생명’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비용을 지불하는 대여 형식인 것은 더욱 기괴하다. 어쨌거나 오랜 세월 외교특사로 희생됐던 판다들이 이제는 정치적 수단이 아닌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하길 바란다. 이 치명적인 귀여움이 장사인지 외교인지 모를 셈법에 이용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다.

이지혜(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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