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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장롱면허- 이상규(편집위원)

기사입력 : 2023-05-29 19:29:52

‘장롱면허’는 특정 면허는 취득했으나 정작 해당 분야에 해당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오랫동안 손을 놓아서 면허를 취득한 의미가 없어 마치 장롱 속에 면허증을 넣어 둔 것과 같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롱면허는 운전면허다.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 졸업 뒤 운전면허를 따지만, 자동차 구입 능력이 없거나 운전하는 게 겁나 운전을 포기한다.

▼자격증 중에도 장롱면허가 많다. 한자와 한국사 자격증은 활용도가 떨어지는 자격증이다. 자기 계발과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 볼 만한 자격증이지만 이 자격증을 활용했다고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주변에 노후 보장과 실업을 대비해 공인중개사나 간호조무사 등 비교적 실용적인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자격증을 사용하지 못하고 집에만 모셔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연령층 중 베이비붐 세대나 은퇴를 앞둔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위해 자격증을 많이 취득한다.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 힘겹게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격증 따는 게 취미 아닌 취미가 돼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새 직장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들은 대개 면접도 못 보고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만다. 치명적인 약점인 나이 때문이다.

▼1960년대생은 모두 860만명이라고 한다. 한 해 약100만명씩 태어난 60년대생이 은퇴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1월 말 기준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61만7603원. 게다가 자산의 80~90%는 집에 묶여 있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은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수록 퇴직자들 간 취업전쟁은 치열해진다. 드물게 돈 되는 자격증을 따서 제2의 인생을 호기롭게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는 취업해도 최저임금 언저리다. 어렵사리 딴 자격증은 장롱에 모셔둔 채.

이상규(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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