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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4) 전통가곡 이수자 김참이

“첫눈에 반했어요… 단번에 깨달았죠… 가곡이 운명인걸”

기사입력 : 2023-06-02 08:01:52

음악과 평생친구 돼라는 부모님 성원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악기·성악 배워

고1 때 우연히 조순자 선생님 공연 본 후

가곡에 발 들여 고단한 훈련의 여정 시작


자작곡으로 독창회 등 열며 가능성 입증

전수자·이수자 이어 유망예술인 선정도

“전통가곡 매력은 느림과 절제의 미덕

많은 이들이 알 때까지 혼신 다해 노력”


낙숫물 소리,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가 떨리는 소리, 눈이 내리는 소리, 인간이 듣지 못하는 음(音)까지 모든 소리는 소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소리 속에는 올곧은 영혼의 뿌리에서 진동하며 울리는 소리. 생의 너머에서 건너오는 듯한 절대음감이 있다. 찰나에서 영원으로 젖는 설렘과 감동, 실타래를 길어 올리며 듣는 이의 무의식까지 흔들어 무화(無化)시키는 소리.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예부터 시조시를 읊으며 부른 노래, 바로 우리의 가곡이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마산 가곡전수관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김참이(31) 이수자를 만나 우리의 전통가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가곡이라는 이름은 옛 양반들과 선비들이 풍류방이라는 곳에 모여서 마음 수양의 한 방법으로 즐겨 부르던 노래를 말합니다.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時調詩)에 곡을 붙여서 거문고와 가야금, 대금과 세피리, 해금과 장구 등의 국악 관현 반주에 맞춰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곡의 이름이지요. 가곡은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입니다.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권고 등재가 될 만큼 음악적, 예술적 완성도도 높습니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김참이 이수자는 여느 청년들처럼 젊고 발랄해 보인다. 그녀가 차분하게 정좌하고 노래를 부르자 웅숭깊은 우물 같은 특이한 목청에서 깊은 울림이 뿜긴다.

이수자가 들려준 노래는 우조시조 ‘월정명’이다. 이 곡은 2018년 부산국제문학제 ‘조선의궤 속의 한국 문화와 문학’에서 불렀던 가곡이다.

우조가 배를 타고 물 아래 비친 달을 보며 배를 타고 강에 나가서 크게 뜬 달을 보면서 ‘선동아 저 달 좀 건져 와라. 즐기게’라는 내용이다. 은은한 달빛이 세상을 비춰주고, 우울한 영혼마저 쓸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김참이 이수자는 어려서부터 “음악과는 평생의 친구가 돼라”는 부모님의 말씀과 성원에 힘입어 다양한 악기와 서양 성악 등을 배울 기회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합창부를, 중학교는 합창대회에서 지휘를 도맡아 할 만큼 음악과 친했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성산아트홀에서 우연히 공연을 보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국악공연이라 더욱 마음이 이끌려 찾은 공연장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예능보유자이신 조순자 선생님이 ‘북두칠성’을 공연하고 있었다. 현악 반주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밤하늘의 별들 사이로 선생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떠가는 느낌이었다. 가곡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당시에는 대학입시 위주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부모님은 취미로 가곡을 배워보는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곡에 매료되어 다른 길로 갈 생각이 없어졌다. 우리 가곡에 대한 마음만이 절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부모님께 편지로 적어 보여드렸다. 결국, 진심이 전달됐다. 그때부터 호흡과 소리를 단련하는 고단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존재를 모두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호수의 물결처럼 서서히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훈련의 관문을 통과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 준 조순자 선생님 덕분이었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김참이 이수자는 2009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전수자, 2014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전수 장학생, 2017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가 되었다. 다음 해에 ‘일견종정; 첫눈에 반하다’로 첫 번째 독창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또한 2019 제11회 한독 공동학술대회 초청공연을, 2019년에는 경남차세대유망예술인 10인에 선정됐다. 2020 국립부산국악원 수요공감 ‘과거로부터 현재를 담다’ 단독공연, 2020 여창가곡 ‘한바탕 서 말 구슬 꿰어가며’로 팬데믹 와중에도 세 번째 독창회를 가졌다.

김참이 이수자는 독창회 중 직접 작곡·작사한 노래를 무대에 올린 두 번째 독창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가곡을 전공하는 그녀가 작곡한다면 좀 더 실감 나게 노랫말을 잘 전달할 수 있고 시김새를 적재적소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래 가사를 적고 곡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지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노래의 완성을 위해 쉬지 않고 매달렸지만, 막상 표현해 보면 선율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앞과 뒤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이어졌다.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작곡 선생님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조언해 주신 덕분에 공연 직전에야 곡이 완성되었다. 창작곡은 엄마를 생각하며 만든 ‘당신도 꽃이라오’라는 곡이었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하나둘 셋 세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돌보지 않은 당신을 위해/ 이제 내가 지켜줄게. 그대란 아름다운 꽃을/ 그대 잊지 말아줘요. 당신도 꽃이란 것을.

이후 김참이 이수자는 ‘풍류동인 담소’ 동인들과 함께 새로운 곡과 가사를 만든다. 그때의 창작 경험이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김참이 이수자는 전통가곡의 매력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약 같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의 무대.

“제 경우가 그랬으니까요. 가곡을 처음 듣는 사람은 정말 느리다는 말을 참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 느림 속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가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정이 격해질 때, 가곡을 많이 듣는데, 슬픈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슬퍼지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즐거워지는 것처럼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많이 움직입니다. 가곡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기뻐도 흘러넘치지 않고, 슬퍼도 비통에 이르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악입니다.”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
전통가곡 이수자인 김참이씨.

바람이 있다면 우연히 맞이한 가곡, “첫눈에 노래에 반해 이 길에 들어선 만큼,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무대에서 부르는 나의 가곡을 듣고 반한다면, 느림에서 오는 가곡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가곡의 깊은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그날을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국악연주단 ‘정음’ 단원, 영송당가곡보존회의 회원으로 ‘풍류동인 담소’ 동인으로 꾸준히 활동 중인 김참이 이수자는 오는 11월 12일(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전통가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감동의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홍 혜 문소설가
홍혜문 소설가

홍혜문(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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