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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해설사 운전기사님- 차재문(연강산업 대표이사수필가)

기사입력 : 2023-06-04 19:44:08

산청군 금서면 수철마을은 지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솥이나 무기를 만들던 ‘철점’이 있어서 무쇠점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에 우뚝 솟은 산이 왕산과 필봉산이다. 이태 전 가을날 나는 수철마을에서 산청 읍내와 경호강 건너편 청계산 골짜기에 있는 선녀탕을 지나 한센인이 거주하는 성심원까지 16㎞ 남짓 걸은 뒤 택시를 타고 성심원에서 수철마을로 되돌아갔다. 가는 동안 칠십 언저리쯤 돼 보이는 기사 분은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 지리산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셨다.

오래전부터 마을 후산의 제련소에서 뽑은 철을 가야 연맹국과 왜(倭)국으로 수출했다면서 유서 깊은 마을임을 강조했다. 나는 오지의 산중마을만 보았는데 그분은 고대사가 남긴 문명의 모자이크로 길손을 안내한 셈이다. 가락국의 전설이 깃든 왕산과 필봉산이 예사 산이 아니라면서 비운의 패주 구형왕도 소환했다. 아무리 지역에 산다고 해도 삶의 터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진정한 생활의 달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해가 갈수록 경호강 수량이 줄어든다면서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때는 나까지도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진심이 느껴졌다.

운전기사님께 조만간 왕산과 필봉산 등반을 하겠다고 했더니 간단한 요기라도 하게 꼭 자기 집에 들르라고 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가 ‘촉석루’ 집필진에 합류하면서 안부 전화를 걸었다. 대뜸 첫마디가 “수철마을에 언제 오시나요”였다. 잠시 스쳐 간 길손을 기억하고 금세라도 고봉밥을 내놓을 것처럼 반겼다. 환대에 가슴이 따뜻해져 내 마음은 즉시 지리산행 배낭을 꾸리고 수철마을로 향했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보인다. 그분은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인지 아는 것 같았다. 하루의 일상이 소소해 보이지만 그 소소함에 마음을 담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내 민낯을 만난다. 그 만남 속에서 자신이 왜,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리고 수철마을의 송찬수 운전기사님처럼 인품이 넉넉한 사람도 만난다.

차재문(연강산업 대표이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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