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81) 통도사 백련암
세상 숨 틔우는 노란 은행나무의 내공
기사입력 : 2023-11-14 08:00:30
늦은 기척
사람으로 살기 힘들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하다
통도사 백련암에 발을 딛는다
여기는 오래된 세계
지상의 어둠에 등불을 밝힌
경전의 문으로 들어가는 통로
핏발 선 청춘을 안간힘으로 견디는 그림자와
간곡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성근 머리의 등과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법당 옆을 서성이는
발길 몇
기우는 세월 끝에서 하나의 문을 열 때
늦은 기척으로
노란 전보처럼 쏟아져
세상의 숨 틔우는 600년 가부좌의 내공
바싹 마른 심정으로 왔다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마주할 수도 있는
여기는 고요한 우주
그래 살아는 보자, 다시 쓰는
생의 서문
☞ 통도사에 가면 통할 수도 있다. 경전이든 질문의 답이든, 생의 방향이든 바람과 나무의 냄새든. 통도사에 가면 어딘가로 다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만 같다. 통도사에서도 백련암은 오래된 나무로 통하는 길이 있다. 1374년, 고려 공민왕 23년에 창건된 암자는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있다. 지금은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백련암을 물들이는 시기다.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가봐야 한다. 그 장엄함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경내에는 염주나무로 불리는 오래된 모감주나무도 있다. 백련암 광명전 가는 길의 빨간 단풍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울창한 나무들을 볼 수 있는 백련암은 사계절 어느 때나 가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가을 다 가기 전에, 600년 은행나무는 한 번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시·글= 이서린 시인, 사진=김관수 작가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