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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국가문화재 환원 운동 재점화

진주문화원 산하 향토연구실

보물 승격 위한 서명운동 돌입

기사입력 : 2023-12-03 21:35:54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진주 촉석루의 국가문화재 승격 운동이 재점화되고 있다.

진주문화원 산하 향토연구실은 지난달 15일부터 진주 중앙동 일대에서 ‘진주 촉석루 보물 승격과 명승지 지정’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향토연구실은 서명인 3만명이 달성되면 서명부는 문화재청과 경남도, 진주시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경남도의회 차원에서도 촉석루의 국가 지정문화재 환원 촉구 대정부 건의안이 추진되고 있다.

진주 촉석루./진주시/
진주 촉석루./진주시/

촉석루는 고려 고종 때인 1241년 창건된 누각으로 평상시에는 사신 접대처나 과거 시험장으로, 전시에는 진주성의 지휘본부로 활용되는 등 900여년 동안 7차례 중건과 보수가 이뤄졌다. 지난 1948년 국보 제276호에 지정된 촉석루는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전소됐으며, 1960년 진주 고적보존회가 재건했다.

하지만 전소 이후 재건 되기 전인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됐는데, 재건 이후 그 위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3년 문화재 지정 심의가 이뤄졌지만 문화재 가운데 가장 하위 등급인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에 그쳤다.

이후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 국보 환원 대시민 운동이 전개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나마 2020년 도 유형문화재 제666호에 지정됐다.

촉석루가 최근 다시 국가문화재 환원 운동이 점화되고 있는 것은 형평성 문제다.

지난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경우 목조 99%가 소실돼 2013년 재건됐지만 국보 위치는 그대로 유지됐고, 최근 영남루의 국보 승격 예고 소식이 나오면서 촉석루에 대한 국보 환원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진주대첩과 논개, 김시민 장군 등으로 대변되는 촉석루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숭례문에 비해 그리 뒤처지지 않고, 1930년대와 현재의 촉석루 모습. 6·25전쟁 소실 이후 재건을 거쳤지만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승격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은 “촉석루는 누각 건축물의 상징이 됐을 만큼 구조, 세부장식이 뛰어나고 누각 하부의 일부 구조를 제외하면 국보 당시의 모습이 충실히 반영돼 있다”며 “일제강점기 1920년~1930년대 일제 당국자들조차 진주 촉석루를 명승(명소)으로 인정해 엽서를 만들어 전국과 아시아권에 배포, 판매할 정도인데 아직 지방문화재로 남아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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