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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제자리 찾기 2- 주강홍(경남시인협회장)

기사입력 : 2023-12-07 19:40:04

한 장 남은 달력이 벽에 서럽게 버티고 섰다.

한 달 남은 직책이 문설주에 걸려 바동댄다.

회계연도가 끝나면 임기를 다시 선택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임명직은 목이 아프게 위를 쳐다봐야 하고, 선출직은 주변을 챙기며 다시 운동화 끈을 졸라매야 한다. 설마 하던 시간이 어느새 임박해서 가슴 졸여야 한다.

객관의 잣대에 몸을 맡기고 남에게 치수를 재게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민주주의가 만든 형극의 틀은 난해해서 합의 추대를 하려니 윗선에 줄서기가 바쁘고 선출하려니 결국에 앙금이 보통이 아니다. 비밀투표이긴 해도 귀신같이 알아낸다. 화들짝 눈빛에 들킨 경우, 상대측의 은밀한 제보, 술김에 자수 등 다양하다. 태연함에 숨긴 서운함과 원망과 고마움이 평생을 이어가기에 처신하기가 무척 어렵다. 조물주가 참 어려운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진검승부는 결국 피를 흘리게 하고 승자의 미소와 패자의 눈물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반칙은 금지사항이긴 하나 그 칼날 위에서도 거래는 이루어지고 읍소도 공갈도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는 권력의 맛을 모른다. 그래서 난장판이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진미는 해본 자만이 안다.

갑자기 안부 문자가 많아지고 명함이 날아오고 띠를 두른 행사장에도 굳은 언약을 청한다. 출판기념회는 봉투 두께의 적정선도, 참석 여부도 난해하다. 상대의 안테나도 지금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간혹 준비되지 않은 후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기득권자의 묵은 욕심에 개탄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는 변은 훌륭하다. 저마다 서랍 안에서 공약을 꺼낸다. 지켜질 가능성은 다음 문제다. 학연·혈연과 지연을 통해서 인간적인 사연이 닿기도 하고 아예 버림받아 제척되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건전한 선택은 사회적 합의다. 권리이며 의무다. 다만 몫을 행사하는 게 녹록지가 않은 것이 문제다. 쌓인 인연과 쌓아질 사연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게 사람살이이다. 매달리기를 포기한 낙엽이 거리를 배회한다. 바람에 실려 다니며 제자리를 찾고 있다. 저 구석 또한 제자리인 것을 자연이 먼저 안다.

주강홍(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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