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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재즈 정신- 강지현(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4-01-14 23:27:40

까딱까딱 발이 먼저 반응했다. 흔들흔들 어깨도 움직였다. 온 몸에 감겨오는 엇박의 리듬, 피아노·기타·베이스·드럼의 환상 연주, 반주에 녹아드는 보컬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꿈꾸듯 빨려들었다. 재즈와의 첫 만남은 달콤하고도 강렬했다. 10년 전쯤 우연히 듣게 된 재즈앨범을 통해서다. 이때부터였다. 내 귀에 재즈가 자주 들린 건. 카페·음식점·술집, 영화·라디오·광고 등 어디서든 재즈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재즈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즉흥연주다. 말 그대로 계획하지 않은 자유로운 연주를 의미한다.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반으로 꼽히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1959)는 즉흥연주의 결정판이다. 당시 연주자들에겐 곡에 대한 어떤 사전정보도 없었다. 녹음 당일 마일스 데이비스가 제시한 최소한의 모드만 공유한 채 리허설도 없이 즉흥연주로 앨범을 완성했다. 결과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그러나 즉흥연주는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재즈평론가 김현준은 재즈의 즉흥연주를 ‘농익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힘겨운 창조 과정’으로 비유했다. 즉흥연주의 밑바탕엔 치열한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이 전제된다. 즉흥연주는 또한 열린 마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자기만의 색채로 연주하되 다른 뮤지션들의 소리를 잘 듣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훌륭한 즉흥연주는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책 ‘재즈의 계절’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재즈의 생명력은 곧 ‘재즈 정신’에 있다.” 재즈 정신은 곧 ‘혁신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늘 경청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규정된 틀과 정해진 관습, 익숙한 연주 방식을 거부’해 온 수많은 뮤지션들이 재즈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재즈 정신’으로 새해를 열어본다.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며, 나를 가둔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혁신의 시작일지 모른다.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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