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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 ‘도전과 승리’는 혐오입니다-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작가칼럼

기사입력 : 2024-02-22 18:55:27

요즘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영상이 하나 있다. 이른바 ‘움파룸파 챌린지’라는 것인데, 여느 챌린지 영상과 마찬가지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까지는 비슷하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몸의 비율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필터를 적용한 채 촬영한다는 것이다.

움파룸파 챌린지의 ‘움파룸파’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웡카’에 등장하는, 초콜릿 공장의 난쟁이 원주민 노동자다. 이 움파룸파처럼 난쟁이 모습이 된 채, 춤을 추고 촬영하며 올리는 것을 두고 움파룸파 챌린지라 부른다.

얼핏 들으면 그저 유쾌한 영상이겠지만, 이것은 엄연히 장애의 희화화다. 왜소증을 겪지 않고 ‘평균 키’를 갖춘 비장애인이 ‘난쟁이처럼 보이게’ 촬영하며 춤을 출 때, 실제로 영상 속 신체 비율로 살아가는 당사자는 웃으며 볼 수 있을까. 카메라 바깥에선 군중에 쉽게 녹아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차별적 시선부터 받는 왜소증 당사자를 따라 하며 춤추는 게 ‘챌린지 문화’로 소비되는 게 맞는 걸까.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웡카’ 역시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웡카’는 2005년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 영화(주인공의 과거 이야기를 별도로 다룬 영화)인데,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선 움파룸파족을 왜소증 당사자 배우 ‘딥 로이’가 연기했다. 하지만 이번 ‘웡카’에서는 비장애인 백인 유명 배우 ‘휴 그랜트’가 움파룸파족의 자리를 꿰찼다. 거대 미디어가 당사자성을 지우자마자 1인 미디어에 움파룸파 챌린지가 쏟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애의 콘텐츠화가 구현되는 곳이 거대 미디어일수록 혐오의 파급력도 거대해진다는 걸 ‘웡카’는 보여줬다.

비장애인이 장애를 콘텐츠화하는 것은 비단 움파룸파 챌린지뿐만 아니다. 얼마 전 가수 아이유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또한 장애를 대상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장애인 주인공들이 캠코더를 통해 가상 세계를 상상할 때 비장애인으로 치환되면서, 마치 장애를 ‘이겨내야만’ 행복한 것처럼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에서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캠코더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극복’되는 세상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이동하고, 일하고, 지역에서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입장문을 밝히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런 지적에 뒤따르는 차별주의자들의 반응이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반응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장애가 벼슬이냐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일상에 가득하다. 아마 이 칼럼이 세상에 등장하면 나에게도 화살이 날아들지 모른다. 아이유를 왜 건드리느냐, 움파룸파가 무슨 장애 희화화냐, 챌린지 하나 가지고 무슨 칼럼씩이나 쓰느냐 등의 화살 말이다. 혐오를 혐오라 지적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다.

영어 ‘challenge’의 뜻은 ‘도전’이고 ‘win’의 뜻은 ‘승리’다. 비장애인이 왜소증 당사자를 따라 하며 춤추는 것을 과연 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장애가 없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이고 ‘사랑으로 이기는 세상’인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비장애인이 장애를 두고 도전과 승리의 콘텐츠로 소비할 때, 현실의 장애인은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 잊히고 사라진다. 우리가 쉽게 도전과 승리를 말하며 즐긴 유희거리가 누군가의 삶을 지운다면, 그것은 혐오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은 2024년이니 말이다.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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