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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간절한 염원을 이루려면- 김기형(경남연구원경제산업연구실 연구원)

기사입력 : 2024-03-06 19:55:34

‘오십에 읽는 주역’의 저자 강기진 소장은 “하늘은 ‘가득함’을 싫어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비운’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한 것은 가득 찬 것이고, 약한 것은 겸허한 것으로 본다. 간절한 염원은 가득 찬 것, 즉 집착이며 간절히 바라면서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나를 비우는 것이라 한다.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히 바라는 것에 보탬이 되고자 하고 내 손으로 모두 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성취에 따른 이득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노력을 할 뿐 이루는 것은 하늘의 몫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과연 겸허하게 나를 비울 수 있을까? 간절한 염원이 나를 더 강하게 옭아맬 것이다.

배트맨의 영웅적 성장 서사를 표현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어린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집 주변의 오래된 우물에 떨어지면서 박쥐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게 된다. 부모님이 범죄자로부터 무참히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브루스 웨인은 자신에게 가장 공포를 주는 박쥐를 심벌로 하는 배트맨으로 분해 고담시의 악(惡)에 맞선다. 복수라는 사적 동기에 집착할수록 그의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고,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배트맨은 신념을 가진 악당 베인에 의해 허리가 부러진 채 탈출할 수 없는 지하 감옥에 갇힌다. 배트맨은 복수라는 사적 동기를 버리고 도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각성을 통해 지하 감옥을 탈출해 도시를 구하는 진정한 영웅이 된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미국 항공우주산업의 메이저인 보잉사의 주요 부품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파이어니어 인더스트리의 모회사 파이어니어 휴먼서비스(Pioneer Human Services) 설립자 잭 달턴의 이야기이다. 1963년 미국의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잭 달턴은 알코올 중독으로 감옥에 다녀온 후 변호사 자격이 박탈당하며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약물중독으로 무력감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Providing a chance for change)’ 파이어니어 휴먼서비스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했다. 60여년 역사를 가진 기업은 현재 미국 우주항공 산업의 핵심 기업인 보잉사의 메이저 공급망 파트너이다. 2021년에 보잉사의 1만2000개 협력 업체 중 183개의 우수업체에만 수여하는 ‘Boeing Supply Chain Performance Achievement’를 수상했다. 2022년 매출은 8900만여 달러(한화 1189억원)로 사업 수입이 28.5%인 2500만여 달러(한화 334억여원)에 이른다. 직원 중 58%가 재소자 또는 약물 중독 치료 중이다. 정부 보조금도 없고, 투자자(주주)도 없이 사업 수익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상의 브루스 웨인과 현실의 잭 달턴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도울 수 있는 꿈을 꾸며 자신을 비웠고, 결국 그것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닮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또한 간절히 바라면 우리 사회의 선의가 그것을 도운다. 파이어니어 인더스트리의 성취의 배경에 보잉사의 사회공헌활동(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 있었다.

최근 10년간의 사회적경제의 성장도 사회적 약자를 돕고자 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의 겸허한 염원에 우리 사회의 선한 의지가 호응한 결과일 것이다. ESG경영이 확대되고 UN과 ILO에서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있어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의 선한 의지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소멸 지역의 재생, 지역 내 취약계층의 일자리, 고립은둔 청년과 자립준비 청년에 대한 지원 등 우리지역의 이웃들을 도울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가진 혁신적인 사회적기업가들의 등장을 겸허하게 염원해본다.

김기형(경남연구원경제산업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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