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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시인이 사는 마을- 김용택(시인)

기사입력 : 2024-03-07 19:37:53

나는 강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 태어나고 자라 산다. 나의 조상들이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란 와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두 살 때 전쟁이 일어났다. 집은 불태워지고, 그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잃었다. 피란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재만 남은 집터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살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세 번째 집으로 1962년에 지으셨다. 아버지는 나무와 풀과 햇살과 흙과 바람으로 집을 지으셨다. 나도 그렇게 바람과 햇살과 흙과 나무로 시를 쓰며 그 시 속에서 살고 싶었다.

마을을 만들어 살면서 사람들은 마을의 질서를 위해 법을 만들어 갔다. 불문율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막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도둑질을 하다 들키면 추방당하거나 스스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거짓말을 하면 평생 신용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게 공부였다. 배우면 써먹었다. 자연이 하는 말을,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잘 알아서 농사와 삶의 근본을 삶았다. 삶이 예술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싸워야 큰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고 했다.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삶 속에서 만들어진 마을 법을 지키며 사람들은 같이 먹고 같이 일하면서 같이 놀았다. 일과 놀이가 하나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을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라 했다. 공동체라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이고 인문적인 이 아름다운 말은, 실은 이 작은 마을 문화에서 만들어졌다. 마을에는 별로 소식이 없었고, 쓰레기가 강물로 나가지 않았다. 가난을 무시하지 않았다. 가난은 남모르게 서로 돌보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마을에서 살아남으면 어디 가서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어렵고도 아름다운 말이다. 마을은 인간을 가르치고 양성하는 학교였다.

스물한 살 때 초등학교 선생이 된 나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3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 인생이 늘 더 잘 되어 있어서 나는 놀란다.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일을 늘 새로워했고, 신비로웠고, 감동적이었다. 초가을 햇살을 날개에 실은 잠자리들이 날아다니는 운동장에서 나는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아이들은 나의 아름다운 스승이었다. 교육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자기 교육이었다. 초등학교 6년, 선생으로 31년 동안 드나들던 모교 교문을 나올 때 나는 부끄럽고 괴로웠다. 아이들에게 잘못한 일들이 되살아나 나는 부끄러웠고,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살지 못해서 괴로웠다. 교육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그대로 살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논밭으로 오가던 길, 학교와 직장을 걸어 다니던 그 강길을 지금도 나는 걷고 있다. 강물을 거스르고 따르는 일은 내게 수긍과 거역을 가르쳤다. 박힌 돌에 물은 거세게 부딪치고 부서지며 흘렀다. 시정이 넘치는 이 작고 소박한 강은 내게 그리움을 실어다 주고 외로움과 태어난 땅에 사는 아픔을 가져갔다. 어느 날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 시를 쓰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달이 다닌 길에서”라고 했다. 나는 달이 다니는 길을 따라다니며 강길에 앉아 시를 썼다. 마을은 나의 학교였고, 해 아래 나무들은 나의 새 책이었으며, 새로 쓰는 시였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로, 참나무가 참나무로 평생을 우람하게 사는 나무들의 하루는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시적인 영감을 주었다. 자연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그 말로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거두는 농부들의 일상은 나의 시가 되었다. 나는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 나는 새와 바람과 달과 별들이, 나무들이 아침 강물과 저문 강물이 하는 말들을 달빛으로 공책에 받아 적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나 강을 건너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달이 뜬 밤 나락을 짊어지고 징검다리를 건너와 달빛이 깔린 마당에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던 고단한 아버지들의 하루 곁에 서 있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어찌 내가 잊고 살까.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하였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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