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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갈이의 폭력- 문저온(시인)

기사입력 : 2024-03-07 19:37:53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폭력은 입에 관한 것이다. 놀러 가자고 어린 나를 데리고 나선 아버지는 이웃을 찾아갔고, 그다음 기억은 느닷없이 아랫니를 밀어뜨리고 혓바닥까지 짓눌러오던 투박한 엄지손가락의 느낌이다. 그 손가락의 찌든 담뱃진 냄새까지. 그 후로 아버지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멀리서라도 그 이웃 아저씨가 보이면 힘껏 달아났다. 힘센 남자 어른들이 대장인 세상에 대한 불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억하는 최초의 거짓도 입에 관한 것이다. 마침내(!)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문앞에 금줄을 친 아버지는 내게 거짓말을 시켰다. 여동생이 태어났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부정 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부정이 뭔지 몰랐고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고 태어난 동생이 여자가 되나? 오늘 거짓말한다고 그게 내일모레도 지속될 수 있나?

그래서 내 최초의 저항은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여동생이 태어났다고도 남동생이 태어났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과묵한 아이가 되었다.

거짓이 놀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중1 때 알았다. 만우절이 되자 반장들이 교실을 바꾸게 했다. 칠판지우개를 물에 적셔두고 책걸상을 뒤돌려 앉아 키득거렸다. 수업이 없다고 적어두고 강당에 숨었다. 선생님들은 피식피식 웃어주었다. 그 집단놀이는 전체와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했다. 학생이 학생집단이라는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탈과 유희.

집단의 움직임이 저항이 된다는 것은 고등학생 때 알았다. 해임되는 선생님들을 지키자는 말이 공기 속을 떠돌더니 이내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말을 전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 불안과 머뭇거림. 만우절이 아닌데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줄지어 서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학생회장이 마이크를 들고 우리가 모인 뜻을 전했다. 검은 테이프를 잘라 가위표로 붙인 마스크를 우리가 썼던가….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소리쳐 항의할 때, 항의하다 힘으로 제지될 때, 옆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모른 척하기. 반사적으로 쳐다보고 고개를 돌리는 짧은 사이, 빠르고 조용한 어떤 판단이 생긴다. 그는 자기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겼고, 그에 따라 제지당했으며, 그것은 그 개인의 일이다.

소리치기. 한 사람이 공동의 입장에 대해 소리쳤으므로, 제자리에 앉은 채로 한 사람의 말을 따라 소리치기. 소리가 소리를 물고 공동의 울림이 되기를 믿기.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어서기. 입을 다문 채 중립적이고 평화롭게, 다만 조금 전 일어난 일에 따른 반응의 움직임을 만들기. 여기 보고 듣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기. 구성원 1의 기립, 10의 기립, 100의 기립….

그러나 운동장은 사라졌다. 만우절 놀이와 어리숙한 침묵시위도 사라졌다. 아버지는 입을 공격하는 손을 제지하지 않았고―아마 작당했을 것이다―불쾌감과 모멸감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앞니는 무참하게 빠져서 꺼내졌다.

어린 내가 뒤돌아 달아난 것은 단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도 아버지도 싫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낄낄거리던 어른들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힘껏 달릴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문저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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