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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다시 봄이다- 김시탁(시인)

기사입력 : 2024-03-13 19:20:38

사방에 꽃봉오리 터뜨리는 소리 요란하다. 봄의 전도사 매화꽃이 피고 벚꽃이 피고 이어 진달래 철쭉이 피어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엔 꽃들도 미안하게 피어 얼른 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 향기에 코를 가져갈 틈도 없었고 김치를 외치며 카메라 앞에 모여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꽃들도 눈치가 있어 고개를 숙인 채 피었다가 서둘러 꽃잎을 떨구었다. 땅이 떨어지는 꽃을 분주하게 받았다. 너무 화려하거나 더 피어있어도 될 덜 익은 비릿한 생을 받아내는 땅은 손보다 마음이 아팠다. 땅은 안타까운 죽음을 제 품에 온전히 받아서 내년 봄 다시 필 자양분을 다져주고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소중히 거두었다. 그 시절 그런 암울한 분위기에도 꽃은 자신을 맘껏 예쁘게 봐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보다 먼저 자신을 희생하며 쓸쓸히 낙화했다.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 꽃에게는 아무 잘못이나 하자가 없었지만 꽃은 그랬다. 그 꽃들이 다시 피어났다. 온 삼라만상에 꽃향기를 날리며 이제는 제대로 한번 봐달라며 마음껏 예뻐해 달라며 온종일 가지런한 윗니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꽃이 향기를 듬뿍 내뿜는 것은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산들산들 흔들리는 모습은 이제는 괜찮다 수고했다 대견하다는 격려의 몸짓이고 희망을 전파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꽃의 위안을 받을 만큼 과연 우리는 지금 편안한가. 저 아름다운 꽃들의 미소에 환하게 답할 자신이 있는가. 미물인 식물이 잠깐 피었다 사그라질 꽃들도 저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저 꽃들처럼 해맑고 아름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어도 온몸으로 침묵하고 견디었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 세상을 밝힐 수 있는가. 만인에게 공평하게 향기를 듬뿍 뿌리며 사랑한다 괜찮다 반갑다는 언어의 몸짓을 아낌없이 보내줄 수 있는가.

작금의 사회를 돌아보면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왠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긋나 있어 소슬바람에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왼쪽은 시끄럽고 오른쪽은 분주하다. 젊은이는 미래가 불안하고 중년은 현재가 불편하고 노년은 오늘 하루도 외롭고 쓸쓸하다. 이편이 저편을 헐뜯고 강자가 약자를 누르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몰아낸다. 이념에 붙인 불에 내로남불이란 솥을 걸고 이기와 독선의 밥을 지어 위선의 숟가락질로 불신의 배를 채운다. 내 탓이오를 외치며 가슴을 치는 손보다는 네 탓이오를 외치며 삿대질을 하는 손이 많다. 겸손과 소통과 타협은 멀리 있고 자만과 불통과 독식은 가까이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더 가진 자는 영원히 가지려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인간이 인간의 허물을 발가벗기고 모난 곳만 끄집어내어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제 얼굴에 묻은 똥은 외면하고 남의 옷에 묻은 먼지만 털어댄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자신의 자리가 높고 견고하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살면서 사람이어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 꽃을 보는 지금이 그렇다.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도 곧 스러질 존재를 인간은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백 년을 살기에도 어려워서 서로 좋은 점만 부각하며 살아가기에도 짧은 생이니 영원이란 없다. 그러니 서로 헐뜯지만 말고 어루만지며 살 순 없을까. 우리 모두는 작은 씨앗으로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싹이 돋고 뿌리를 내려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잘 자라 꽃을 피웠고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너도 꽃이었고 나도 꽃이었으니 서로 꽃으로도 때리지 말자. 선거보다 소중한 게 사람이란 꽃이다. 선거란 교활한 손으로 소중한 사람의 꽃을 함부로 꺾지 말라.

당선이란 꽃이 한시적으로 화려하고 눈부실지 모르지만 더 추하게 시들어 추락한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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