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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저출산과 카르텔- 최국진(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기사입력 : 2024-03-17 19:39:36

뜬금없이 저출산에 웬 카르텔이냐고 의아해하시는 독자도 계실 법하다. 카르텔은 종이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르타(charta)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면상의 합의를 뜻하는 의미로 출발했다. 지금은 그 합의의 의미가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담합하는 의미로 변하여 카르텔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카르텔로는 전 세계가 활동 무대인 마약 카르텔이 있고, 매년 총기사고로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데도 총기 규제가 사라지지 않도록 로비하는 미국의 총기업체 카르텔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각종 정치 카르텔, 경제 카르텔, 언론 카르텔 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 가장 뜨거운 사회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의대 정원을 둘러싼 갈등도 어찌 보면 정부와 의사 카르텔 간의 힘겨루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저출산과 관련이 있는 카르텔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사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하고 넘어가는 카르텔인데, 바로 사교육 카르텔과 건설 카르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에 우리나라 하위 소득 20%인 1분위 가구의 사교육비 부담액이 평균 48만원,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사교육비 부담액이 114만원으로 나타났다. 주변에 물어보면 위의 금액은 자녀 한 명당 금액이며, 자녀가 많을수록 액수가 훨씬 커진다고 하니 가계소득 대비 사교육 지출액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국토연구원의 ‘저출생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첫째 아이 출산을 결정하는 요인 중 주택이 30.4%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공감하겠지만, 결국 우리나라 중산층 가계 지출의 절반 정도는 사교육과 주택 비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이제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극단적으로 설명해 보자. 자녀 둘을 가진 중산층 부부가 워라밸도 지키지 못하고 추가 근로를 통해 월 8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고 하자. 그 절반을 사교육비와 주택 비용으로 지출하고 나면 절반이 남는다. 남은 40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나면 여가에 쓸 돈조차 없게 되고, 추가 근로로 인해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이 모습을 지켜본 MZ세대들은 워라밸이 가능한 직장을 구해서 조금 적지만 월 6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식구가 둘뿐이니, 생활비도 300만원 이하로 적게 들 것이고 주택도 부담 없는 임대주택 정도로 만족한다. 그러면 남아 있는 300만원으로 여가 활동을 즐기고, 휴가 때면 가까운 이웃 나라로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이쯤 되면 X세대인 나라도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비록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정말 사교육비와 주택 비용만 줄일 수 있다면 일반 가정의 소비 형태는 확연하게 변할 수 있다. 일단 부족한 수입을 충당하기 위한 추가 근로가 줄어들어 시간적 여유는 물론 심적인 여유가 생길 것이다. 또한 여유로워진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도 생기니, 아이가 생기더라도 같이 여가 생활을 즐기며 아이 없이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답이 뻔히 보이는데도 해결 못 하는 원인이 바로 카르텔에 있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면서도 번번이 사교육 철폐 정책은 카르텔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다. 저출산으로 인한 아파트 실수요자 급감이 곧 닥쳐오는 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주택 가격의 현실화는 카르텔에 막혀 먼 나라 이야기다.

이제는 일부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 절대다수의 생존권이 침해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당장은 해당 세력의 강한 반발과 세수 및 경제 위축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후손 대대로 이어져야 하는 대한민국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참으로 아련하다.

최국진(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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