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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봄의 생기를 깨우는 예술 나들이- 이상헌((사)한국미술협회경상남도지회장)

기사입력 : 2024-03-20 19:44:12

매섭던 꽃샘추위가 누그러지며 온누리에 봄기운이 돌고 초목에 새싹이 튼다. 따스함을 머금은 바람과 온화한 기운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춘분(春分)을 맞았다. 춘분은 추분처럼 밤과 낮의 길이가 12시간으로 같고 추위와 더위 또한 같다고 전해진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연중 농사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하여 일 년 농사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농사만 그럴까. 학생들은 새 학년의 긴장과 설렘으로 의욕이 충만해지고, 신년 계획을 세웠던 직장인들은 작심삼일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의지를 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봄은 추위에 바싹 얼어있던 우리 일상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으며 한 해의 본격적인 시작을 열어준다.

봄의 전령 매화를 시작으로 곧 벚꽃의 개화도 앞두고 있다. 거리 곳곳이 화사한 꽃으로 물들면 비로소 봄이 왔음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봄꽃은 찰나에 피고 지기에 아쉽기도 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그 순간의 감동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봄꽃과 닮았다. 꽃망울 터트리듯 톡 터지는 감동의 순간이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감흥을 불러온다. 특히 각양각색의 미술작품들을 마주하다 보면 시각적 즐거움은 물론 세상에 대한 인식과 내면의 감각이 활짝 열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이러한 순간들은 메말랐던 감수성을 채워주고 정신을 고양시키며 삶을 충만하게 가꾸어준다.

이제 겨우내 무거운 공기 속에 잠들어있던 감각을 깨우고 생생한 봄의 기운을 만끽하러 나갈 시간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신춘 공연과 전시들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반갑게 손짓하고 있다. 먼저 가볼 만한 곳은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경남도립미술관이다. 경남미술의 현재를 조명하는 ‘경남아트나우-산, 섬, 들’ 전을 기획하여 22일부터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경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산, 섬, 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예술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지역 중심의 전시다. 평소 미술관이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번 전시야말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경남지역 근현대 미술의 시대정신과 낭만을 만나고 싶다면 창원시립문신미술관에서 4월 28일까지 진행하는 ‘바다는 잘 있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다. 문신미술관을 둘러싼 바다를 주제로, 해방 이후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도 바다의 고장 마산에서 문화예술을 활짝 꽃피웠던 문신, 강신석, 이림, 전혁림 등 10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반짝이는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미술관에서 격랑의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여유롭게 항해하며 예향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큰 기획전이 아니어도 경남문화예술회관이나 성산아트홀 같은 지역 공공전시장에서도 언제나 크고 작은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규모도, 형태도, 분야도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 정신과 열정으로 빚어낸 작품들이 다채로운 삶의 풍경과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인근의 백화점이나 관공서, 쇼핑몰에서도 갤러리를 흔히 접할 수 있고,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보석 같은 작은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미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우리 일상과 함께하며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소생(蘇生)’에서의 소(蘇)는 되살아나다, 깨어나다의 뜻이다. 지난겨울 잔뜩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깨우고 산뜻한 봄옷을 꺼내 입고 예술을 만나러 나들이를 떠나보자. 톡 터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이고 풍성한 샘이 되어 다음 봄이 올 때까지 어떠한 혹독함이 찾아올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지 않을까.

이상헌((사)한국미술협회경상남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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