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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사월도 껍데기는 가라-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지역방송발전위원)

기사입력 : 2024-04-03 19:36:32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하 생략)

신동엽 시인이 1967년에 발표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이다. 대학에 갓 입학하자마자 처음 이 시를 처음 접한 필자는 또래의 뭇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참여 문학을 신봉하던 문학청년들에게는 교과서가 되어준 시였다.

시의 모티브가 된 4·19혁명은 시민들이 부정선거와 장기 집권에 맞서 들고일어나 제1공화국을 종언케 한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우리 역사에서 권력에 격렬하게 저항한 항거의 하나였고, 혁명의 전형적 모습에 가장 가까웠던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혁명은 애초 꿈꾸던 장밋빛 이상이 안개 속에 뿌연 자태를 드러내다 사라지는 법.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James Geertz)는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그러나 혁명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뿐이다.”고 말한다. 그런 혼돈의 시간에는 어김없이 불의와 부조리, 폭력이 끼어들어 혁명의 판을 어지럽힌다.

시인은 이처럼 혁명 정신에 반하는 가짜, 거짓, 올바르지 못한 것 등의 온갖 부정적인 존재를 껍데기라 불렀다. 혁명에도 여타의 인간사처럼 공을 가로채는 부류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이들 또한 시인이 경멸하던 껍데기와 다름없다.

4·19혁명이 일어난 지도 보름 남짓 있으면 어언 64돌이 된다. 당시 혁명이 염원하던 민주주의가 이 땅에 온전히 뿌리내렸는가? 그리고 시인이 증오하던 껍데기는 이 땅에서 사라졌는가?

4월 혁명을 이끈 추진 동력체였고, 후에도 그 정신을 계승한 대학가 민주화 운동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줄기였음이 틀림없다. 독재 권력에 굴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이도 적지 않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분도 있다. 그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있기에 대학가 민주화 운동은 그동안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인식되다시피 했다. 이에 따라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86 운동권 출신 일부 정치인들의 부정적 행태에 대해서도 별다른 비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4·10 총선에서는 여당이 선거 전략의 하나로 운동권 정치인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대표적으로 서울 마포을에서 3선의 중진 정청래에게 대항해 운동권에서 전향한 함운경을 공천한 것처럼 여러 지역구에서 야당의 운동권 출신 후보를 저격할 후보를 골라 내세웠다. 이러한 여당의 운동권 청산 전략을 국민이 전폭적으로 동의할지, 아니면 운동권 출신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계속 이어갈지가 이번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지지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만약에 여당의 선거 전략이 통한다면 정치권은 첨예한 이념 대결을 어느 정도 뒷전으로 밀쳐놓고 민생이니 경제니 하는 실용을 중시하는 스펙트럼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이 전략이 지지받지 못한다면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에서도 지난 국회의 모습이 재연되고 차기 대선 고지를 점하기 위한 여야 간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엄혹한 시절에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당당하게’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의 순수한 기개로 살아가는 ‘알맹이’ 같은 86 운동권 출신이 여전히 있다. 이들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혁명의 사월은 눈물이 나도록 서러울지 모른다. 시인이 살아 계셨더라면 올해도 4월을 맞으면서 “껍데기는 가라!”고 여전히 목 놓아 외치지 않을까?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지역방송발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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