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세상을 보며] 색깔을 찾은 날- 차상호(정치부 부장)

기사입력 : 2024-04-11 00:10:27

1980년 12월 1일. KBS 1TV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컬러방송이 처음 시작됐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듯하지만 ‘총천연색’을 내세운 컬러방송시대의 개막은 혁명적인 것이었고, 많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다.

시대가 변했지만 지금도 한동안은 색깔을 잃는다. 아니 색깔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내 마음대로 보이지를 못한다. 파랑, 빨강, 녹색, 주황, 검정까지. 각 정당의 상징색이기에 선거 때만큼은 마음 놓고 드러낼 수가 없다.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도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는 물론이고 매년 재보궐 선거도 치러지니 난감하다.

셀럽이든 인플루언서든 이른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은 더하다. SNS로 소통하지만, 선거기간 혹은 투표일에는 더욱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어떤 연예인은 투표 인증사진을 찍을 때 입었던 옷에 5가지 색깔이 담겼다. 누구를 찍었는지 절대 알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떤 연예인은 최근 운동하는 모습을 SNS에 올렸지만 흑백사진이었다. 진영 논리에 갇힌 ‘프로 불편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을 걱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단 색깔뿐 아니다. 숫자를 의미하는 손가락 모양도 시비가 되는 시기다. 엄지척이든 브이든.

그래도 11일이면 모두 자유로워질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라도 푸른 계열의 옷을 입을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도 붉은 계열의 신발을 신을 수도 있겠다.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정치 성향을 보인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 아닐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과거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빈부의 양극화만이 아니라 정치 성향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미 확고한 지지를 가진 이들을 토론을 통해 마음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가능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토론회 화면을 캡처하기 위해 여러 선거구의 토론 방송을 봤는데, 기본적으로 질문이나 답변을 하면서 상대 후보 쪽을 바라보는 후보조차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질문할 때도 카메라만 응시하고, 질문을 듣는 쪽은 준비해 온 원고를 보거나 메모를 한다. 상대방이 답변할 때도 정면이나 아래만을 본다. 덕분에(?) 1시간 남짓한 영상을 거의 다 보고 몇 번을 돌려보고 멈췄다가 재생하기를 반복해서야 서로를 보고 얘기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유세 과정에서도 썩 보기 좋지 않은 장면이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기 어려우니 예를 들어 장날에 한쪽이 유세차량을 가져와 선거운동을 하면 상대 후보는 시간을 달리하거나, 선거운동원들도 한쪽이 할 때는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 갔던 몇 번의 유세에서는 상대 후보 운동원 사이에 끼여 자기 후보 피켓을 들고 흔드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유세하는 도중에 선거송을 크게 틀면서 지나가는 상대 후보 차량도 있으니 소위 말하는 ‘상도’가 없는 듯해 아쉽다.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텐데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다면, 선거가 끝이 나도 상대에 대한 미움만 남을 테니 이들의 사이는 더 멀어질 뿐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선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야 한다.

차상호(정치부 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차상호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