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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13)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 예술로 일구는 ‘창작 농장’

기사입력 : 2024-04-18 08:04:22

서울 살다 김해에 터 잡고
4년 전 소규모 공장 지역에
지역 시각 예술의 발화점인
‘스페이스 사랑농장’ 마련

이주노동자 등 사회이슈와
지역성 담은 프로젝트 진행
전시·토론·세미나도 활발
작가들의 실험적 공간이자
영감 공유하는 창작 거점

난민 등 소외계층의 이야기
예술로 환기하는 ‘메신저’
노인세대 관련 개인전 목표
주변 공장 ‘미디어파사드’도


김해 한림의 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예전에는 마을이었던, 이제는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 원주민들이 떠난 부지가 나온다. 그곳에 예술가의 창작 거점인 ‘스페이스 사랑농장’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난개발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껴안은 그곳은 분명 존재하지만 어딘가 외면하게 되는, 그렇기에 ‘사랑농장’의 주인인 김도영(50) 작가가 평생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들과 어딘가 닮았다.

김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 가령 노숙자나 이주노동자, 난민 등의 이야기를 설치물, 촬영 비디오와 사진, 소리, 그래픽 등으로 풀어왔다. ‘소외된 것’을 담아오던 그가 한평생 살아오던 서울을 떠나 소외되고 있는 지역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어딘가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그에게 ‘사랑농장’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업실이자 문화가 소외된 지역 속 예술의 발화점이 될 창작 거점이기도 하다.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어느 날 만난 김해, 그곳에 창작 거점을 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김해에는 언제 오게 됐나.

△김해에는 지난 2019년 봉하마을에 창작스튜디오가 팝업 식으로 만들어졌을 때 김해 전체를 리서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을 맺게 됐다. 이 지역에 대해 알아가다 마침 서울 작업실을 정리한 상태라 이곳에서 작업실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창작 거점’으로의 공간을 생각했는지.

△이곳을 얻게 된 이후 작업실로 쓸 것인지 공간으로 쓸 것인지에 대해 몇 달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가 리서치하고 있는 지금 이 지역이 떠올랐다. 대안공간이 많은 수도권은 작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활동도 잦은 반면 경남은 상대적으로 그런 기회가 적다고 생각했다. 자기 활동을 위해 애쓰는 지역 작가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매개로서 또 지역에 시각예술의 ‘발화점’이 되고 싶다는 그런 목적으로 공간 활용을 해보자 마음 먹게 됐다.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작 거점으로 어떤 기획들이 만들어지고 있나.

△단순히 전시에 그치지 않고,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도를 돕고 합동 프로젝트로 영감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획도 하고 있다. 전시 프로젝트, 토론, 세미나 등 이제까지 30~40회 정도를 거쳐온 것 같다. 미얀마, 코로나, 젠더, 사회계층 등 사회 이슈와 고유한 지역성을 고민하는 여러 주제들이 있어 왔다.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노트북과 연결된 모니터를 보며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노트북과 연결된 모니터를 보며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의 작품./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의 작품./성승건 기자/

-사랑농장이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이제 4년이 됐다. 타지에서 사비를 들여 공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다사다난하게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사랑농장에 정이 많이 들었다.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그 원인이 ‘지침’이 아니길 바란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다 하고 더 이상 없겠다 싶을 때까진 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도영 작가의 설치 작품 ‘Hole: residue’
김도영 작가의 설치 작품 ‘Hole: residue’
‘물과 풀을 둘러싼 것들(Surroundings Nature and Water)’
‘물과 풀을 둘러싼 것들(Surroundings Nature and Water)’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다

-2021년 사랑농장에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미얀마의 봄’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전국의 작가 학예사, 운동가 등 90여명이 참여한 큰 프로젝트였다. 전시로만 끝나지 않았던 것이 이 전시가 알려지며 우연한 계기로 김해에 있는 미얀마 이주민들과 연결이 됐다. 그들이 마침 고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기에 함께 아이디어를 나눴는데 어느 순간 나도 피켓을 들고 미얀마 봄 혁명을 위한 집회를 함께 하고 있더라. 이런 경험이 영상 기록물 작품 ‘The White Flag Project’로 이어졌다.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곳(Where Dreams Get Shattered)’.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곳(Where Dreams Get Shattered)’.

-작업 활동을 보면 소외계층에 주제가 맞춰져 있는데, 계기가 있는가?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나는 예술가가 사회의 직업군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듯 나 또한 예술가로서 그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으니 나는 다른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알고 있지만 외면하게 되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을 통해 환기시키는 그런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었다. 조각과 설치예술을 배웠지만 미디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그런 내 작업에 맞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김해는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곳을 기반으로 작업에 영감을 얻기도 하는가.

△김해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 실제로 사랑농장의 주변 공장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면서 일하고 있다. 이전에 농촌 이주노동자에 대한 작업을 1년 하기도 해서 이곳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년 즈음 출입국관리소에서 들이닥쳐 불법체류자를 데려가고 숙소가 빌 때가 있었다. 빈 곳에 들어가 봤는데, 너무 열악했다.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평등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인 원형수조 안을 살펴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인 원형수조 안을 살펴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원통의 ‘수조’ 구조물이 보이는데, 청주시립미술관과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전시했던 물·환경과 관련한 이 프로젝트도 사랑농장에서 단서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랑농장은 수돗물이 아닌 지하수가 연결돼 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어느 날 물이 완전히 오염됐다. 혼탁한 물을 보면서도 ‘이는 닦아도 될까’ 싶어 양치질을 해봤는데 결국 크게 앓았다. 이후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대상과,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받는 대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설치 작품 ‘Hole: residue’, ‘Surroundings Nature and Water’ 등으로 담았다. 환경이, 삶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이 오염된다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열악한 환경을 가진 소외계층이다. 환경이 주제이지만 결국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의 작업실인 김해시 한림면 ‘스페이스 사랑농장’.
김도영 설치·미디어아트 작가의 작업실인 김해시 한림면 ‘스페이스 사랑농장’.

-작가 개인이기도 하면서 사랑농장을 이끄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획자, 작가, 공간운영자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로서의 활동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영’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노인세대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해 내년 개인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랑공간은 작가들이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단기적으로 올해 사랑농장 주변의 공장과 창고 건물과 외벽을 활용한 ‘공장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여러 재원을 확보해 보려고 한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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