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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겐 높은 ‘전기차 충전소’ 문턱

창원서 충전소 이용 해보니

기사입력 : 2024-04-28 20:48:16

운전경력 30년 지체장애 김쌍호씨
승하차 공간 좁고 주차블록에 막혀
접근 어렵고 손 안닿아 이용 못해
“전기차 사고 싶어도 못사 개선 시급”


“참으로 안 되네요. 장애인은 전기차 충전기에 접근하는 것도, 이용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합니다.”

지난 26일 창원시 성산구 창원중앙역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창원지회 김쌍호(67) 봉사단장이 경남도의회 정재욱 의원과 함께 장애인의 전기차 충전소 이용 가능 실태를 점검하고, 시연하는 과정에 한숨을 내쉬며 털어놓은 말이다. 김 단장은 휠체어 없이 거동이 어렵지만, 장애인 운전 보조장치가 설치된 차량을 몰고 다니며 운전 경력만 30년가량 되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날 시연 상황에서 그는 차에서 내리는 것부터 높은 벽을 체감했다. 차량을 세운 충전 구역은 장애인 주차구역과 달리 일반 주차 면적처럼 폭이 좁고, 승·하차를 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차량에서 휠체어를 꺼내어 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창원중앙역 공영주차장에서 장애인의 전기차 충전소 이용 가능 실태 점검에 나선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창원지회 김쌍호씨가 주차블록에 막혀 충전기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난 26일 창원중앙역 공영주차장에서 장애인의 전기차 충전소 이용 가능 실태 점검에 나선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창원지회 김쌍호씨가 주차블록에 막혀 충전기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환경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전기차 이용이 장려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선택권을 제약받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휠체어를 타더라도 운전이 가능한 장애인들이 전기차 충전소의 경우 충전기까지 접근조차 어렵고, 조작하는데 손이 닿지 않는 등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시연에서 운전석 옆 주차면이 비었다 하더라도, 충전기 앞에 설치된 카 스토퍼(주차 블록)와 배수구에 막혀 휠체어를 타고는 충전기까지 접근이 어려웠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충전기 앞에 다가가더라도 충전을 위해 화면을 터치하는 조작부까지는 휠체어를 탄 상태로는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충전기를 눈앞에 두고도 충전하지 못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도내에서는 올해 3월 기준, 장애인 본인용 자동차 표지(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차 가능)가 2만1246건이 발급됐다. 보호자용 등을 더하면 3만8000건에 이른다. 이들 상당수가 전기차를 구매하더라도 충전소 이용에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내 공공기관이나 공영주차장 등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1만7000기 상당이지만, 이 중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충전기가 몇 기인지 실태는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김 단장은 “전기차 충전소에 들어가 주차 후 힘들게 내리더라도 이용하기까지 어려워 (충전하지 못한 채) 돌아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장애인에게 휠체어나 차량은 발이나 마찬가지인데, 전기차를 사고 싶어도 충전소 이용이 어려워 선택에 제약을 받는다”고 말했다.

경남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한 장애인은 전기차를 산 뒤 충전소 이용이 어려워 주택에 사비를 들여 충전기를 설치해 이용한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전기자동차 충전소에 대해 보조금 지원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환경부의 보조금 및 설치·운영지침 등에 근거해 공사 절차 등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장애인 이용을 위한 별도 지침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충전소를 설치하는 업체별로 규격 등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욱 도의원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경남의 전기차는 2020년 6308대에서 지난해 3만6225대로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자동차법(약칭)의 사각지대로 교통약자에 대한 편의 증진은 보완해 나가야 한다. 제도적으로 담보돼야 장애인도 전기차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남도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장애인 편의 등은 촘촘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다”며 “도내 장애인들의 전기차 충전소 이용 현황은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충전시설 등에 장애인용 구역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의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 제주도에서 지난 2020년 복권기금사업으로 전국 최초로 전기차 전문가와 사회복지 단체, 이용자 등과 함께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장애인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자체 설치 기준을 마련하고 ‘교통약자 배려 전기차 충전소’를 개소한 바 있다. 해당 기준에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면적(폭 3.3m·길이 5m 이상) 의무 확보와 휠체어 승·하차 시 양방향 통행을 위한 카 스토퍼 간격 규격화, 충전기 조작부 1.2m 이하 설정, 충전케이블 조작 편이 및 경량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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