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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26) 시단의 메두사 김언희 시인

기사입력 : 2011-07-08 10:45:27


나는 더 노래지려고 한다… 나는 더더욱 샛노려지려고 나는 <김언희 '만트라에서'>

 


 a) 정육과 肉汁으로 사는 것

 b) 애인의 아랫도리처럼 달콤한 것

 c) 애인의 아랫도리처럼 구역질나는 것

 d) 두고 보면 알게 되는 것

 e) 두고 보면 모르게 되는 것

 f)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항문이어도 좋은 것

 g) 수세식 변기처럼 순결한 것

 h) 똥을 먹일 수 있는 것

 i) 끽 소리 없이 똥을 먹는 것

 j)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라는 것

 …(중략)

 l) 더러운 곳을 피해서 무서운 곳으로 가는 것

 m) 무서운 곳을 피해서 더 더러운 곳으로 가는 것

   …(하략)

 <시를 분류하는 법, 중국의 백과사전 부분>


"나는 똥 퍼주는 시인, 진정한 時의 시작은 입 없는 것들의 입이 되어 부르는 노래" 

시단의 메두사, 김언희(58) 시인. 거침없는 글쓰기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성기와 배설물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 도착적 성행위 묘사, 강도 높은 폭력적 언어 구사로 억압받고 왜곡된 욕망이 배태해 낸 끔찍한 현실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포착해 왔다. 올 봄 샛노란 표지의 네 번째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를 들고 왔다. 6년 만이다. 화제의 시인 김언희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김언희 시인이 샛노란 표지의 네 번째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를 들고 뒤를 바라보고 있다.



 
◇ '용서할 수 없는' 네 권의 책

▲ 트렁크(세계사, 1995)= 그로테스크 한 성적 이미지를 묘사해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욕망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기계와 인간을 동일시한다. 욕망이 되어 떠도는 삶의 풍경은 자아니 의식이니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따라서 욕망은 있되 욕망의 내용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기계로 치환되고 기계의 욕망이 인간으로 치환된다.

▲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 강도를 더욱 높여 도발적이고 엽기적 언어로 독자를 유혹한다. 오싹한 경고로 시작한다. '임신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낭만, 서정, 아름다움 따위는 아예 기대하지 말란다.

▲ 뜻밖의 대답(민음사, 2005)= 여성의 육신과 정신에 가해져 온 억압을 토로해 온 시인은 이제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굴레로 향한다. '시 쓰기에 관한 시'가 많다. 그에게 시는 '부를 때마다 틀린 얼굴로 돌아보는 것', '한 줄을 쓰면 두 줄이 지워지'고 '너무나 짧지만 한없이 길고 긴. 짧은' 것이다. 그러나 '열렬히 끈질기게 수음하면서 발기한 채로 죽을. 무덤까지. 발기한 채로 갈' 것이라고 한다.

▲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늘 그렇듯 일상적이면서도 만만한 단어들과 함께 너무 당혹스러울 만큼의 비속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시편들을 완성한다. 지르고, 찌르고, 짓뭉개고, 터뜨리고 하는 감정적 토로와 내지름은 변함없다. 바닥이라는 바로 그 끝 간 데까지 한번 가보기의 전술은 여전하다.





 
◇ '후회중'이 아니라 '후희중'

시와 달리 시인은 단아하고 차분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교직을 그만둔 뒤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다닌다.

-어려운 시로 독자를 힘들게 하는 이유는.

△시는 독자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독자가 읽는 순간 시가 발생한다. "이게 뭐지, 아! 다르구나". 그게 시다. 시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이게 뭘까?"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시의 자장(磁場)이다. 서서히 스며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변하게 하고 어딘가 흔적이 남아야 한다.

-선생님 시는 마약 같다. 자꾸 빠져든다.

△좋은 시는 오미(五味)를 갖춘 시다. 예술은 쾌락에 봉사하는 분야다. 읽고 즐거우면 좋다. 깊은 본성에 가 닿도록 하는 것, 그 본성을 흔들어서 고통과 더불어 쾌락을 느꼈으면 한다. 예술은 죽음에 대한 각성, 바꿔 말하면 생명에 대한 각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 단어를 시어로 잡는 이유라도. 

△사람은 동물이다. 감각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술은 감각을 매체로 하는 것이다. 죽어 있는 감각을 깨워서 예민하게, 활발하게 살아있게 해주고 싶다. 건드림을 당하면서 나에게 이런게 있었구나…. 가능한 한 넓은 스펙트럼으로 한번씩 눌러보고(건드려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성기를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왜?

△도돌이표와 같다. 분노한 독자가 다시 읽는다. 재밌지 않느냐. 그것이 빠지만 시가 흐트러진다. "왜 그것이 거기 있을까? 왜 그것이 거기 있으면 안되지?" 거기부터 시다. 시는 시인이 30% 쓰고 독자가 70% 쓴다. 정말 좋은 시는 독자가 90% 쓰게 하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희한한 장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오나.

△화집이나 사진집은 감각의 폭을 넓힌다. 황당무계한 B급류의 영화도 즐겨 본다.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죽기 살기로 그렸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타협이라고는 모르고, 반쯤 미친 것 같고, 무지막지하고, 그렇게 그리면서도 늘 그림에 허덕이는, 언제 보아도 굶주린 맹수 같은…. 그림과 사진집을 많이 본다.

-네 번째 시집이다. 처음과 어떻게 다르나.

△방법이 달라졌다. 표현하고자 하는데 더 가까이 갔다. 이번 시집은 입문(入門)의 의미가 있다. 문턱을 넘어 어딘가로 들어서는, 돌아 나올 수 없는 어딘가로 '이제야, 비로소' 들어서는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들어서는. 이전 시집은 내 입으로 내 말을 하는 시집이었다. 진정한 시란 타자의 입으로 부르는 타자의 노래다. 입 없는 것들의 입이 되어 부르는 노래가 진정한 시의 시작이다.

-스스로를 '똥 퍼주는 시인'이라고 하던데.

△'밥 퍼주는 시인'은 마음의 양식과 위로, 사랑을 주는 시인이다. 나는 '똥 퍼주는 시인'이다. 똥은 거짓말 안한다. 의식의 똥은 말인데 입으로 나오는 똥은 거짓말을 한다. 가짜 똥도 많다. 그런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김언희 시인은?

진주 출생. 경상대 외국어교육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4년 박인환문학상 특별상 수상.

 
★ 취재후기
 
인터뷰하기 전에 각오가 필요했다. 두어 달 전부터 짬짬이 작품을 읽으며 준비를 했지만, 역시 힘들었다. 기자를 충분히 편하게 배려해 주었지만, 소화해 내는 것이 역시 쉽지 않았다. 눈이 뚫어져라 시를 붙잡고 읽고 또 읽고, 머리를 굴려 본다. 막힌 콧구멍이 뚫려 코로 숨쉬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코가 막혔다. 결국 '김언희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사다리타기로 팥빙수를 먹었다.

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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