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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2) 산청 대원사

굽어진 돌계단서 죄 짓는듯 걷는다

기사입력 : 2021-03-04 20:52:50

갈 수도 있었던 길 - 산청 대원사에서

방장산 계곡 물소리를 업고 걸었다 굽어진 돌계단 입구를 들어서니 어쩌자고 절 마당에 파쇄석을 깔았을까 어지러운 생각 마냥 적요 깨는 발소리 죄 짓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대웅전 뒤편 언덕 홀로 앉은 저 비구니 함께 출가 맹세했던 그날의 단발머리, 아닌 줄 알지만 힐끔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합장하고 돌아서는데 산그늘이 좋다던 성문 스님 생각에 자꾸만 뒤가 신경 쓰였다

3월의 엷은 해가 좌선한 장독대 곁 아직은 빈 가지 사이 비껴가는 새를 본다 지금은 어느 절에서 마음 닦고 계시나 내 안의 잡념은 시시때때 일렁이는데 천광전 기둥에 매달린 목탁 서성이는 내 눈길을, 바람이 먼저 알고 두드리고 가는 구나


☞ 지리산을 다른 말로 방장산, 또는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자신을 ‘방장산의 노인’이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산청 대원사 일주문 현판에는 ‘방장산 대원사’라고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절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면 계곡의 물소리가 바람과 함께 온몸을 휘감는다. 대원사는 숱한 세월과 사건 뒤 1955년 ‘지리산 호랑이’라 불린 당대 여걸 만허당 법일스님이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으로 만들었다.

대원사 다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조성했으며 부처님 진신사리 58과가 봉안된 보물이다. 약간 붉은 빛의 석탑은 노을이 질 때 비장한 위엄을 보여주기도 한다. 천광전과 원통보전, 대웅전이 나란한 뒤편 장독대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천광전 4개의 방문마다 적혀 있는 한자들이 멋진 필체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기둥에 매달린 목탁을 두드리는 바람소리도.

시·글= 이서린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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