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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도 사람이 산다 (2)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

‘주민자치’ 법은 만들었지만…여전히 ‘민’ 아닌 ‘관’ 중심

기사입력 : 2021-03-09 20:31:57

지난해 12월, 무려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주민자치 원리 강화, 지방의회 독립성 강화 등 내용이 담겼다. ‘창간기획-경남에도 사람이 산다’ 2회에서는 지방지차법 전부개정안에 담긴 ‘주민자치’의 내용과 이를 기반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정부’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다룬다.

1.지난해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창원시청 앞 광장에 ‘창원특례시 실현’을 알리는 홍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경남신문 DB/
1.지난해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창원시청 앞 광장에 ‘창원특례시 실현’을 알리는 홍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경남신문 DB/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1995년부터 지자체장 선거가 직선으로 치러지면서, 많은 이들이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었을까? 바꾸어 말하면, 관선이 민선으로, 직접선거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단순하게 ‘사람을 뽑는 행위’로 주민자치의 무늬만을 그려온 지난 30여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시도를 해왔다. 이에 대한 뒤늦은 응답이 바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다. 개정안 제1조에는 ‘주민자치의 원리 강화’가 목적규정으로 명시됐다.

지난해 6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공론화 제3차 도민토론회에서 도민참여단이 논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공론화 제3차 도민토론회에서 도민참여단이 논의를 하고 있다.

◇주민이 직접 선택한다

주민자치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주요 개정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자치단체 기관구성 형태 다양화’를 들 수 있다. 이는 지역 여건에 따라 주민투표로 단체장 선임방식과 기관구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의회와 집행부 견제구도가 아닌, 연합을 통해 지방사무에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도 변경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다음은 ‘주민조례발안 제도’ 도입이다. 주민이 조례를 발의하고자 할 때, 도지사에게 이를 건의하고 도지사가 의회에 조례를 발의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주민이 직접 조례를 제정하고, 개·폐 청구도 할 수 있게 됐다.

‘주민감사 청구인수 하향조정’도 이뤄졌다. 주민감사 청구를 위해서 시·도 지역은 500명, 시·군·구는 200명이 필요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각각 300명, 150명으로 요건을 완화했다. 또 주민조례발안과 감사청구를 19세에서 18세부터 할 수 있도록 기준연령도 완화됐다. 아울러 주민소환 개표 요건, 주민투표 대상·확정요건을 완화하는 관련법 개정도 추진한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내용
?
자치단체 기관 구성 형태 다양화
주민투표로 단체장 선임방식 선택

주민이 조례 제정, 개·폐 청구 가능
주민감사 청구인 수도 하향 조정

의장이 인사권 행사·전문인력 충원
지방의회 자율·독립·전문성 확보


◇지방사무는 지방이 알아서

이번 개정안에는 ‘지방사무는 지방이 알아서 한다’는 자치권 확대 내용도 대거 담겼다. 먼저 의장의 인사권 행사와 정책지원 전문인력 충원이다. 특히 광역의회뿐 아니라 시·군·구 의회까지 적용 되면서 이번 개정안 최대수혜자는 지방의회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까지 단체장이 갖던 사무직원에 대한 인사권한을 의장이 가지며, 의원정수 1/2까지 정책지원관, 일명 보좌관을 둘 수 있게 된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지방의정연수원 설립도 추진된다. 이를 통해 각 지방의회는 숙원과제였던 집행부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 부여와 국가 중심 사무배분 방지를 위해 ‘사무배분 원칙 규정 및 준수의무’ 부여,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에 대해 하위법령에서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금지해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4. 2019년 10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국회통과를 위한 자치분권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경남신문 DB/
4. 2019년 10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국회통과를 위한 자치분권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경남신문 DB/

◇지방자치의 또다른 축, 재정분권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바로 ‘돈’이다. 입법권과 조세권이 두 축으로 기능할 때 지방자치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분권은 또 하나의 숙원과제다.

2019년 기준으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7대 23였다. 쉽게 말해 정부 주머니에 들어간 돈이 지자체가 가진 돈의 3배를 넘었다는 말이다. 이를 7대 3으로, 다시 6대 4로 조정하는 작업이 현 정부의 ‘재정분권’ 플랜이다.

지난 2019년 시작된 1단계 재정분권을 통해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율을 21%로 인상하고, 3조6000억에 달하는 국고보조사업도 지자체사업으로 전환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현행 세출구조에서 지자체의 자율성은 얼마나 될까? 올해 경남도 예산은 10조에 육박하지만 이 중 복지비와 인건비, 시·군 조정교부금 등 법적·의무적 경비를 제외하고 도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자체 사업에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은 7000억원 규모 확보도 쉽지 않다는 것이 도의회 예산결산특위의 설명이다. 때문에 각 지자체는 교부세 재원이 되는 내국세 비중을 높이고, 국세-지방세 구조를 전면 개편하는 등 늘어나는 행정수요에 부응할 지방재정 확충 마련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점진적 과정을 통해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재정과 함께 관련 사업·사무까지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재정분권의 완성이라는 것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경남도는 2019년 9월 도청서 주민참여예산 총회를 열어 2020년 본예산에 반영할 주민참여예산을 확정했다./경남도/
경남도는 2019년 9월 도청서 주민참여예산 총회를 열어 2020년 본예산에 반영할 주민참여예산을 확정했다./경남도/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은

재정분권은 또 하나의 숙원 과제
정부 재정권 지방이양이 분권 완성

주민참여예산제·공론화 위원회 등
주민자치 관련 다양한 시도는 고무적

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 이행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 격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

지난해 경남도는 행정안전부 주관 ‘2020년도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평가’에서 광역 자치단체 분야 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로 이뤄진 사업 중, 주민이 제안했지만 결과적으로 행정에서 주도하는 사업이 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는 진주시 옛 예하초등학교 일원이 서부경남 공공병원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것을 발표하며 ‘도민이 직접 후보지를 선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공론화 준비위원회를 구성, 100명의 도민참여단이 사전학습 후 네 차례의 토론을 가지는 등 숙의과정을 거쳐 선정된 후보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일부 전문가들이 숙의과정에 제공된 정보의 타당성 및 공정성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일었다.

이 두 사례는 경남의 주민자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주민참여예산제와 공론화 위원회 구성 등 주민자치 원리를 토대로 이뤄지는 다양한 시도와 이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점검과 지적은 발전적이고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숙한 주민자치에 대한 인식과 여전히 민(民)이 아닌 관(官)이 주도하는 민·관협치의 한계 등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선결 과제 또한 우리 앞에 남았다.

결국 주민자치 강화라는 명문화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自治)’ 행위가 이행될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의 격상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경영 경남도의회 자치분권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의 의의는 주민자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에 대한 내실을 채워가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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