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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매운맛의 세계- 강지현(편집부장)

기사입력 : 2021-04-12 20:05:48

음식의 여러 맛 중 요즘 가장 핫한 맛은 매운맛이지 싶다. ‘매운맛 열풍’을 뜨겁게 부채질한 건 지난해부터 유행한 마라탕이었다. 저릴 마(麻)에 매울 랄(辣). 중국 쓰촨지역 향신료 ‘마라’는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낸다는 뜻을 지녔다. 입안이 얼얼해지다 못해 정신이 번쩍 드는 맛, 눈물 콧물까지 쏙 빠지게 만드는 그 중독성 있는 ‘빨간 맛’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지난달 한국의 매운맛으로 세계를 울린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별세했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매운맛의 대표주자였다. 고추의 매운 정도를 평가하는 ‘스코빌 지수’로 따지자면 신라면의 지수는 2700이다. 그동안 라면계의 매운맛은 점차 강도를 높여왔다. 동남아 시장을 불타오르게 한 불닭볶음면은 4400, 불마왕라면은 1만4400에 이른다. 풋고추 1400, 청양고추가 4000~1만2000 정도 되니, 그 맛은 그야말로 ‘화끈한 불맛’이겠다.

▼코로나로 인해 매운맛 열풍이 더 거세졌다. 집콕 생활의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푼단다. 매운 치킨, 매운 족발, 매운 떡볶이에 이어 매운 도넛, 매운 아이스크림까지 나왔다. ‘맵부심(매운맛+자부심)’ ‘혈중 마라 농도’ ‘저세상 매운맛’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젊은이들 사이에 매운맛은 이제 하나의 놀이다. 단계별로 나눠진 디테일한 매운맛에 그들은 환호한다. 맵찔이(매운 음식을 잘 못먹는 사람)에게 마니아 수준인 ‘빨간 맛 4단계’는 범접하기 힘든 맛이다.

▼지난주 ‘민심의 매운맛’을 톡톡히 본 사람들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레드카드’를 들었다. 이제 선택받은 자들이 ‘정치의 매운맛’을 보여줄 차례다. 그 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매운맛은 강도를 높일수록 더 통쾌하고 짜릿하지만, 너무 자주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 그러니 이번엔 제발 ‘제대로 된 매운맛’ 좀 보여달라. 자극적이기만 한 빨간 맛은 신물난다. 우리는 속 상할 일 없는 ‘건강한 매운맛’을 원한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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