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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의령 자신의 농장에 ‘수학교과서연구소’ 만든 김영구씨

“1600~2000년 수학책 3000여권 수집… 박물관 만드는 게 꿈”

기사입력 : 2021-05-12 21:01:44

“수학책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재밌겠어요.”

학창 시절 수학 과목은 좋은 입시 결과를 내기 위한 필수 과목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주기도 또는 애증의 대상으로 남기도 하는 수학. 오늘날 역시 수학은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과목이지만 정작 그 누구도 수학의 변천사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중요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수학의 변천사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의령군 가례면 괴진리에서 매실 농장을 운영하며 농장 안 ‘수학 교과서 연구소’를 만든 김영구(62)씨다.

30여년간 국내 수학책을 수집해 온 김영구씨가 의령군 가례면 자신의 농장 내 직접 만든 수학교과서연구소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30여년간 국내 수학책을 수집해 온 김영구씨가 의령군 가례면 자신의 농장 내 직접 만든 수학교과서연구소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수학책의 역사를 모으다

과거 창원 마산에서 수학 강사로 활동했던 김영구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 있게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후회 없는 인생인 동시에 타인에게도 의미가 될만한 것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했다. 그 결과 김씨를 사로잡은 것은 한평생 손에 쥔 수학책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수많은 수학책을 본 김씨는 “어느 날 문득 수학책을 봤는데 이 책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사회가 변화하는 것처럼 수학책도 꾸준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내용을 달리하는데 이것을 정리해 놓은 사람과 장소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수학책 변화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우리나라 수학의 역사를 대변해줄 수학책 수집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의령군 가례면 수학교과서연구소./성승건 기자/
의령군 가례면 수학교과서연구소./성승건 기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현재 사용되지 않는 수학책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학과 관련된 책이 있다면 김씨는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고서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기도, 인터넷 경매에 올라오는 책들을 빠짐없이 모으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이트를 방문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지원금 없이 혼자 모든 경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한 고서 전문가가 오래된 수학책을 구했다는 소식에 책을 수집하러 가려 했지만 현금이 부족해 지인에게 돈을 빌려 책을 수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라 나마저 포기하면 자료가 사라질 텐데라는 생각에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라며 “자료를 수집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이 수학책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료를 수집하는 계기가 됐다.

수집 후 자료를 보관하는 것 또한 난관이었다. 책 보관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했기에 임시방편으로 햇빛이 들지 않도록 암막을 설치하고 습기를 막기 위해 제습제를 갖추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김씨는 “고서 같은 경우 더 이상의 시간이 없다. 언제 습기가 차 종이가 찢어질지 모른다. 역사의 일부분이 되는 자료인데 파손되면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를 잃는 것이다”며 “전문적인 기관에서 책들을 보관해야 후세에도 이어지게 된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농장에 ‘수학교과서연구소’ 만든 김영구씨./성승건 기자/
자신의 농장에 ‘수학교과서연구소’ 만든 김영구씨./성승건 기자/

◇수학책 박물관을 꿈꾸다

‘수학 교과서 연구소’에는 1660년 조선 중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2000년까지의 수학 교과서 및 참고서 3000여 권이 시대에 맞춰 진열돼 있다. 이 중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조선 후기에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학책 ‘산학계몽’, ‘수리정온’이다.

그는 “이러한 자료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료이기 때문에 애정이 크다”며 “산학계몽 같은 경우 학계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료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최초의 수학 박물관 설립을 꿈꾸고 있다. 자신이 가진 걸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공유하고자 했던 생각이 박물관을 통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큰 규모의 박물관은 아니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찾는 분, 학생들의 현장학습장 등으로 운영돼 우리나라 수학책의 역사에 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 지자체의 지원 없이 김씨 혼자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김씨는 “수학책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은 따로 없어 박물관이 설립되면 지역의 특색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령군 가례면 수학교과서연구소./성승건 기자/
의령군 가례면 수학교과서연구소./성승건 기자/

◇“후회하지 않아.”

김씨는 금전적, 시간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수학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관심이 있었기에 3000권에 이르는 수학책을 수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간다는 것이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소중한 역사가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뺏긴 후 우리나라의 독특한 수학 교육의 역사는 단절되고, 일본식 학교 교육에 의해서 서양 수학이 우리나라 교육에 그대로 도입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 수학 교재나 연구서는 아무도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없어져 가는 수학 교재를 김씨는 열정 하나만으로 수집했다.

또 제자들과의 약속 때문이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제자들에게 당당한 스승이 되기로 약속 했는데 포기한다면 제자들에게 부끄러운 스승이 될 수 있어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승부욕도 강하고 한번 하고자 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버릇이 수집에 큰 도움이 됐다. 수학책을 수집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힘들었던 것도 많이 겪었지만 수학에 대한 애정이 있어 일을 시작한 것에 후회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김씨는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지금까지 모았던 수학책 역사가 멈추지 않고 후세까지 전해져 위대한 유산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유산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30여년간 국내 수학책을 수집해 온 김영구씨가 의령군 가례면 자신의 농장 내 직접 만든 수학교과서연구소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30여년간 국내 수학책을 수집해 온 김영구씨가 의령군 가례면 자신의 농장 내 직접 만든 수학교과서연구소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박준영 기자 bk604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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