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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이서린(시인)

기사입력 : 2021-05-13 20:13:59

죽음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알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죽으면 과연 끝일까.

죽음과 출가를 생각하던 스무살 무렵 프리초프 카프라 교수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를 싫어했는데 우연히 접한 카프라 교수의 책은 우주와 물리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였다. 물론 출가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동양사상에 관한 책은 이것저것 읽고 있었다. 카프라 교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물질은 에너지가 모인 형태이며 의식과 물질은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은 맥락이 같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은 후 물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철학은 자연과 공존해야 하고 융합도 중요함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동양적 지혜와 서양의 과학 사이에 본질적인 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카프라 교수의 사상에 크게 공감하였다.

최근엔 우리나라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을 읽었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후 요즘은 ‘알쓸범잡’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갑다. ‘떨림과 울림’에는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동시대의 플라톤의 관념론에 대립했다)는 원자론이 나온다.

“관습에 의해 맛이 달고 관습에 의해 쓰며, 관습에 의해 뜨겁고 관습에 의해 차갑다. 색깔 역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원자와 진공뿐이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외는 인간의 주관과 관습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데모크리토스의 말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 아는 사람은 안다.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원자들이 흩어지는 것이다. 그 원자들이 세상으로, 우주로 흩어졌다가 다시 결합한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한 사람을 이루었던 원자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으면 그를 이루던 것들이 구름과 나무와 꽃과 바람으로 내 곁에 오지 않을까.

몇 년 전에 보았던 배우 공유가 주연이었던 드라마 ‘도깨비’. 참 열심히 본방사수를 했었다. 죽지 못하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벌을 받은 장수와 운명적인, 아니 숙명적인 사랑 이야기. 그 사랑과 만나고 헤어질 때 이런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 작가에 감탄했던,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말. 도깨비가 불에 타 연기처럼 사라지며 여자에게 하던 말.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그것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빌어볼게.”

김은숙 작가도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대본을 쓰지 않았을까.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찾아올 거라는 도깨비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일 수도, 환생일 수도 있고 물리학 측면에서 원자의 환원일 수도 있겠지. 첫눈으로, 비로 찾아올게라는 말이 그처럼 슬프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벌써 8년 전, 겨울이 끝날 무렵 엄마가 돌아가시고 4월. 집 앞 전깃줄에 정말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새가 찾아왔다. 북면에 이사 와서 처음 들어본 새소리였다. 아, 엄마가 왔구나. 이 딸을 못 잊어서 새가 되어 왔구나. 그래서 쓴 시가 ‘노랑할미새’였다.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났다면 주변을 둘러보자. 사라진 게 아니라 함께 보던 꽃으로,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구름으로, 눈과 비로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를 이루었던 것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자연으로, 우리 곁에 돌아올 테니까.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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