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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개혁의 디테일-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기사입력 : 2021-05-16 20:37:19

농촌마을 가꾸기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공공사업이죠. 공무원, 마을대표, 업체관계자, 참여작가들의 첫 관계자 모임에 껴들었죠. 놀랐습니다. 벽체 때 벗기고 밑칠 하는 인부들의 하루 품삯은 업체에서 낸 견적대로 이십이만원.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은 시급 팔천칠백이십원. 하루 여덟 시간 기준이면 일당 육만구천칠백육십원. 인부 품삯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이었습니다.

확 빡쳤습니다. “작가라고 고상할 것 없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것 아닌가. 정부방침이라 해도 생각 좀 해보자”했죠. 그렇지만 어쩝니까? 공무원인들 뾰족한 대책 없죠. 기준을 그렇게 정해놓은 것이니. 만약 제가 그런 기준에 해당했다면 일 안합니다. 저는 ‘자존심이 곧 자존감’인 허세덩어리거든요.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기웃거려봅니다만 사회, 민간단체 대상 공모사업 지원예산에 애초 업무진행 인건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현실은? 따내기만 하면 어떤 수법으로든 인건비를 짜냅니다. 명백한 범죄죠. 그럼에도 죄의식을 갖는 단체가 있을까요? 그냥 그런 오랜 관행으로 보입니다. 수법조차 수십 년 된 낡은 것이죠.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통한다니까요. 사업을 선정하는 공무원은 과연 모를까요? 글쎄요?

스스로 혁신가니 활동가, 운동가니 하면서 이런 공공의 일만 노리는 ‘프로젝트 사냥꾼’도 흔합니다. 그냥 그들 방식의 밥벌이일 뿐입니다. 역겹죠.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겠죠. 하지만 이런 악습, 악행이 선량한 시민단체 행동에 일반적인 오해를 불러오는 것일 수도.

공공사업 관련 기획, 디자인을 자주 하청 받는 한 후배가 있습니다. 일해주고 받은 대금 중 일부를 뒷돈으로 돌려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받았답니다. 제가 대신 고발해주겠다 하자 “그건 절 두 번 죽이는 겁니다”해서 접었습니다. 기가 찹니다.

유시민 작가는 “내가 태어난 1959년과 2020년의 단면을 잘라 비교하면(중략) 대한민국 역사의 합리적 발전에 제한적으로나마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소소한 일상, 행정말단의 발전에서도 이런 자부심을 갖게 되길 원합니다! 개혁에도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부디!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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