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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이건희 미술관 수도권 건립 유감- 김명현(함안의령본부장)

기사입력 : 2021-06-01 20:00:36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부 미술품 중 국내외 근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인 소위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미술계를 중심으로 서울 유치 움직임을 보였고 뒤이어 광역자치단체 및 기초자치단체 10곳 정도가 ‘문화 균형발전’이나 각종 ‘연고’ 등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의령군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유치전에 나선 광역자치단체나 규모가 큰 기초자치단체들과는 체급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령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곳이다. 이 회장의 아들인 고 이건희 회장도 대구에서 출생했지만 유년시절에는 친가인 의령군 정곡면에서 성장했다. 호암 이병철 회장에 대한 의령군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의령군은 2013년 이병철 회장 생가가 있는 정곡면 일대를 역사와 문화가 있는 ‘부잣길’로 조성해 관광명소로 발전시켰다. 여기다 지난 4·7 재선거에서 당선된 오태완 의령군수는 매년 10월 호암 이병철 회장을 기리는 ‘호암문화대제전’을 개최하겠다고 공약했고 준비작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오 군수는 의령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 회장의 창업정신 및 기업가 정신을 계승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축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병철 회장과 삼성에 대한 의령군민들의 자부심은 지난 12일 이 회장 고향인 정곡면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조기 사면 촉구 및 이건희미술관 유치 결의대회’에서 드러났다. 군민들은 세계적인 반도체 패권경쟁과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조기 사면을 통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국내 대표 기업인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병철 회장과 삼성에 대한 자부심이 사면 촉구로 표출된 셈이다. 또 창업주 고향에 아들인 이건희 회장 미술관이 유치되는 것도 명분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의령군은 앞서 11일에는 ‘호암문화대제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곡면 주변에 호암이병철대로, 삼성이건희대로 등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이 사업은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선 의령군이 이병철 회장 부자 및 삼성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부각시켜주고 있다. 의령에 이건희 미술관이 유치된다면 ‘대도시권의 문화독점시대’를 극복하고 ‘문화 균형발전’의 원년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구감소 및 지역경제 기반 부족으로 존립 위기에 놓여 있는 의령군이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면서 지역 균형발전의 모범사례가 될 수도 있다.

비수도권 자치단체들이 유치전에 나서면서 내세운 ‘문화역량의 지역배분을 통한 균형발전’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 덕수궁관, 서울관, 청주관 등 4개관으로 운영 중이다. 3개관이 수도권에 있고, 1개는 충청권에 있다. 삼성가 소유인 리움미술관(서울 용산구)과 호암미술관(경기도 용인) 등 상당수 민간 미술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무 장관이 기증자 정신과 접근성을 감안해 수도권에 이건희 미술관을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정부가 비수도권에 대한 배려나 문화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김명현(함안의령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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