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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식물도 잠을 잔다는데 - 임성구

기사입력 : 2021-07-01 08:46:29

식물만도 못한 사람들 야근을 밥 먹듯한다

시퍼렇게 돈독 오른 어느 회사 사장님은

오늘도 돈꽃이 피는 통장 들고 다그친다.


넓은 밭 한나절에 가는 소를 다그치듯

이랴자랴 빨리빨리 불호령의 농부같이


목이 쉰 저항의 노래와

붉은 머리띠 안쓰럽다.


☞거슬러 70년대 섬유공장에서는 야근을 밥 먹듯 시킨 적이 있었다. 한창 잠이 많았던 소녀는 미싱 바늘에 여린 손끝을 박음질 당하고서야 잠을 쫓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추가 수당으로 받은 ‘삼립빵’ 한 개에도 감지덕지하며 일소처럼 묵묵히 시키는 일이나 했지 꽃도 풀도 잠을 자는지 마는지 생각이나 했겠는가?

누가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배고픈 그 시절에는 인권과 휴식이란 한낱 사치였을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 세상이 바뀌고 노동의 가치와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휴식의 중요성을 알게 됐지만, 아직도 야근을 밥 먹듯 시키고 그의 명을 따라야 하는 식물만도 못한 일꾼들은 있다.

임성구 시인의 「식물도 잠을 잔다는데」가 그 현장을 증언한다. ‘이랴자랴 빨리빨리 불호령의 농부같이’ 잘 가고 있는 일소의 엉덩짝을 내리치는 모습이 생생하다. 매정하게 이익만 추구하려는 자본권력의 재촉에 뿔이 난 민초들이 ‘저항의 노래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와 투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안쓰러운 마음이 잘 녹아있다.

‘돈독’이 올라 날뛰는 세상을 시인은 처연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과연 ‘돈꽃’이 피는 통장은 누구의 것이던가. -이남순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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