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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2) 김경희 작가

“오늘도 쉼없는 붓질… 하고 싶은 전시가 너무 많아요”

그림이 좋아 서양화 전공으로 대학 편입

기사입력 : 2021-07-29 21:41:22

최근 미술계가 젊어지고 있다. 전시는 미술관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그림을 내걸거나 이색적인 방법으로 전시하는 ‘탈갤러리’ 움직임도 그 영향이다. 지난달 부산현대미술관은 20·30대 MZ(밀레니얼+Z)세대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내 미술관 최초로 방탈출 전시를 기획했다. 천편일률적인 전시에서 벗어나 요즘 세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방탈출을 접목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밀양에서도 ‘폐목공소’라는 장소에서 이색 전시가 열렸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폐목공소를 갤러리로 삼은 김경희(32) 미술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경희 작가가 창원대 예술대학원 실기실에서 작품을 그리고 있다.
김경희 작가가 창원대 예술대학원 실기실에서 작품을 그리고 있다.

◇미술은 내 운명= 창원대학교 예술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 중인 김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주변 사물이나 풍경, 인물을 자주 그리곤 했는데, 재능을 발견한 오빠의 권유로 미술에 발을 디뎠다. 순수미술은 먹고살기 어렵다는 입시학원 선생님의 말에 디자인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흥미를 잃어 잠시 미술을 놓기도 했다.

이내 김 작가는 그림 그릴 때가 가장 나다운 때라는 것을 깨닫고 서양화 전공으로 대학을 편입하고 계속 붓을 잡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찮아 4년 동안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제 힘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김 작가는 “가족들에게 선포를 했어요.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고. 가족들이 믿어주고 격려해줘서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희씨는 작업실 한켠에 놓인 천이 씌워진 캔버스 틀을 자랑했다. “아버지 목공소에 있던 나무로 뚝딱 만들어서 천을 씌운 다음 나사를 박아서 학교 작업실까지 옮겨다 주셨어요. 아빠 방식의 응원인 셈이죠.”

지난해 11월 밀양 수산에 있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폐목공소에서 열린 전시회./김경희 작가/
지난해 11월 밀양 수산에 있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폐목공소에서 열린 전시회./김경희 작가/

◇작가노트= 김 작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삶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본인의 내적경험으로 시작된 작업은 동시대 현대인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됐다. 작가는 “흔히 밥 먹는 배 따로, 디저트 먹는 배 따로라고 하잖아요.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예쁘게 꾸며진 디저트를 찾는 게 인간의 욕망처럼 보였어요. 디저트는 먹을 땐 행복한데 충족되고 나면 허무하죠. 디저트를 통해 자본주의 사물의 생산과 소비 증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목공소를 갤러리로= 지난해 11월 밀양 수산에 있는 폐목공소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곳은 김 작가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곳으로 폐업 후 창고로 쓰였다. 김 작가는 가상의 전시를 기획하라는 과제를 받고 아버지의 공간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막연히 목공소에서 전시를 하는 상상을 해온 김 작가는 동료들과 함께 힘을 모아 힙(hip)한 전시를 만들어 냈다. 12명의 작가가 모여 목공소의 묵은 때를 벗기고 흰 벽이 아닌 연장이 놓인 공간과 어우러지도록 작품을 내걸었다. 외진 곳에 누가 찾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인스타그램(SNS)에서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김 작가는 “보통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에 주목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목공소라는 공간 자체에 궁금증을 많이 갖더라고요. 공간과 예술작품의 호흡이 돋보였던 전시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웠어요. 특히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어요. 발길이 끊긴 목공소에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밤에도 불을 켜두고 작가들을 위해 간식을 내오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전업작가가 꿈= 아직 개인전을 열어본 적이 없는 경희씨는 졸업 후 작가로 활동하는 게 걱정이라고 했다. 동기 대부분이 디자인을 배우거나 직장을 찾아 떠났다. 전업작가로 살 방도가 없어서다. 그래도 김 작가는 주변 젊은 예술가들과 머리를 맞대어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해보면서 조금씩 활동 방향성을 찾고 있다.

김 작가는 “10월에 목공소에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똑똑, talktalk’전을 열 계획입니다. 이전 전시가 공간과 예술가를 주제로 했다면, 이번엔 공간을 둘러싼 지역, 그리고 예술가의 조화를 주제로 할 거예요”라고 했다. 공간 전시의 의의에서 판을 키워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꾸린 것이 특징이다. 체험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모아 참여작가들의 작품과 컬래버 전시할 예정이다.

경희씨는 인터뷰 내내 이루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그동안 캔버스나 종이에만 작업을 했는데, 평화목공소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무판넬에 그림을 그려봤다며 새로운 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표작을 묻는 기자에게 김 작가는 매번 바뀐다며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년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면 당장 쓸 작업실부터 구해야 해요. 진짜 세상에 뛰어드는 거죠. 그렇지만 걱정보다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차고 행복해요. 전업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전할 겁니다.”

글·사진=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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