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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기자의 판읽기] (1) ‘밀양역 선로노동자 사망사고’ 1심 판결

그날 판결은 밀양역 사망사고 피해회복 바랐다

피해자 ‘피해회복에 진심’… 그 판사의 판결은 ‘결’이 달랐다

기사입력 : 2021-09-09 10:41:25

매일 쏟아지는 판결 속엔 우리네 인생살이가 담겨 있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는 법의 심판을, 또다른 누군가는 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도 기자의 ‘판읽기(판결문 읽어주는 기자)’는 창원지방법원을 출입하고 있는 도영진 기자가 ‘사심 가득한’ 시선으로 건져 올린 판결문 속 세상만사를 들여다보고 법률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의미도 함께 생각하는 장입니다./편집자 주/

2019년 10월 22일 발생한 열차와 작업자들의 충돌로 선로작업 중 사망사고가 발생한 밀양역 도착 500m 지점. 작업자들의 안전모가 떨어져 있다./경남신문DB/
2019년 10월 22일 발생한 열차와 작업자들의 충돌로 선로작업 중 사망사고가 발생한 밀양역 도착 500m 지점. 작업자들의 안전모가 떨어져 있다./경남신문DB/

지난 1일 오전이었습니다. 한 판결문을 읽다가 ‘어? 이거 좀 뭔가 다르다’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동안 읽어 봤던 판결문과 ‘결’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곧장 변호사 두 분께 자문했습니다.

-반응은?

“오, 기자님 말대로 좀 이례적이네요. 이런 판결은 처음 봐요.”

다른 변호사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굉장히 과감한 판결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접한 판결문은 사실 ‘벌어졌으면 안 될’ 산업재해에 관한 1심 선고였습니다.

바로 지난 2019년 10월, 철도 노동자 5명이 선로 면줄맞춤 작업을 하던 중 열차 진입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3명이 열차에 치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밀양역 선로노동자 사망사고입니다. 사고 발생 2년여가 지나서야 1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 겁니다.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형사1단독 맹준영 부장판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고 당시 코레일 부산경남본부장(57)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다른 관리자 3명에 대해서도 금고 8개월~1년, 집행유예 2년을 내렸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코레일에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습니다.

구 산업안전보건법상 법정형은 1억원 이하의 벌금인데, 재판부는 ‘법정최고형량’을 꽉 채워 선고한 것입니다. 이례적이고, 과감하면서도 사법부가 이 사고 책임의 무게를 무겁고 엄중하게 물은 것이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최고형량’ 판결이 이례적이고 과감해 돋보이기까지 하는 건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던 산재 사업장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던 그간 사법부의 온도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결’이 달랐던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이 판결을 선고한 맹준영 부장판사는 판결문 속 자신이 왜 엄중한 책임을 물었는지 ‘양형 이유’를 통해 세세하게 밝혔습니다. 제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두 분의 변호사가 이례적이고, 과감하다고 판단한 부분도 ‘양형 이유’ 부분이었는데, 여기에는 맹 부장판사가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에 얼마나 ‘진심인 편’인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좀 길지만 함께 그 부분을 보실까요?

〈이 사건 사고로 인해 망인은 작업현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고, 피해자 2명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망인의 유족은 평생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 생계에도 막대한 어려움을 입게 될 것임이 어렵지 않게 인정되고, 피해자 2명 역시 재판 과정에서의 증인신문을 통해 여전히 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한국철도공사의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는 대단히 미흡하다고 보인다. 피고인 한국철도공사는 피해자 측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밝혀 달라는 재판부의 요구에 대해서 (중략) 피고인 한국철도공사와의 자체적인 노력과는 직접 연관된다고 보기 어려운 금전 지급 내역을 제출하였을 뿐, 피고인 한국철도공사가 사망한 망인의 유족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회복시키거나, 소속 근로자인 나머지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로 인해 중대한 상해를 입은 다른 피해자들인 2명의 피해 회복과 관련하여 어떠한 구체적·적극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망인의 유족 측에서 비록 이 법정에 종국적으로 처벌불원의사를 밝히기는 하였으나, 수사 과정에서는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는 등 처벌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는 등 그 의사가 번복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해 유족 측에서 수사 과정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음이 어렵지 않게 인정되고, 이는 피고인들의 법정태도로부터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피고인들 측으로부터의 진정성 있는 사죄가 부재하였기 때문으로 보이므로, 이와 같은 사정은 양형에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함이 타당하다.

반면에 피고인들 모두 이 법정에 이르러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관계와 사정을 내세워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미흡 사실 내지 본인들의 주의의무위반의 과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면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대부분을 뒤집고 심지어 피해자들 측에 사고로 인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과연 진지하게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떠신가요?

유족과 피해자 가족이 상당한 기간 정신적 고통을 겪어온 것은 바로 ‘진정성 있는 사죄가 부재하였기 때문’이라고 맹 부장판사는 본 것입니다.

변호사들도 이 부분을 주목했습니다. 비록 집행유예이긴 하지만, 징역·금고형을 내린 건 반성하지 않기에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창원지역의 한 변호사는 “피해회복 노력이 부족한 것도 맞지만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는 과실을 인정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뒤집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 피고인들에게 벌금형을 내리지 않고 징역·금고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며 “왜냐하면 잘못을 부인하고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봤을 때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건 물론 같은 상황이 또 발생했을 때도 또 똑같은 행동을 할 거라 충분히 판단되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처벌불원의사, 즉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바뀌어 온 것을 선고에 반영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창원지역의 또 다른 변호사는 “보통 처벌불원의사를 양형의견에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하는데 맹 부장판사는 그 의사의 ‘진의’를 의심하고 불리한 정상으로 반영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사실 처음 본다”며 “당초 처벌을 원했다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 의사로 바뀌기까지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태도가 진정성이 안 느껴졌다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형을 적게 받기 위해 하는 ‘형식적인 사과’로는 유족과 피해자들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낸 판결 같다”고 해석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과감하고 이례적이었던 판결, 그 이면에는 큰 법원의 합의부가 아닌 지방법원 아래 지원의 형사단독이었기에 더욱 시원시원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두 변호사 모두 항소심에선 형량이 줄어들지 않을까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열심히 하는 판사’임에는 틀림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과감하고 이례적이었던 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맹준영 부장판사가 직접 자신의 판결에 대한 ‘설명자료’까지 내면서 왜 이 판결이 중요했는지 ‘홍보’까지 했는데요.

맹 판사는 “이 사건은 비록 구 산업안전보호법이 적용되는 사안이기는 하나, 고도의 위험성이 수반되는 작업현장에서 근로자가 선로작업 중 사망한 사안에서 사업주인 한국철도공사에 대하여 산업안전보호법이 규정하는 법정최고형량을 선택하여 사업주의 형사책임을 엄중히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사안의 판단과 처리 방향에 일응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임”이라고 직접 자신의 판결에 의미를 담았습니다.

저는 설명자료의 이 대목에서 맹 판사가 얼마나 ‘재판에 진심인 편’이고 ‘노동감수성’이 뛰어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산업재해가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는 바람까지 담긴 것으로 제가 해석했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끝으로 맹 판사가 생각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잘 해석한 경남신문 9월 1일자 사설 마지막 문장으로 마칩니다.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최고의 가치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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