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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트렌드] MZ세대가 열광하는 ‘바이닐’

빙그르르~ 돌고 도는 아날로그 감성

기사입력 : 2021-10-14 20:55:00

아이유, 백예린, 이소라, 잔나비, 버스커버스커 등 가수들이 냈다 하면 단 몇 분 만에 품절에다 최근엔 일부 미개봉 제품의 경우 원래의 수십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 것은? 바로 다시 돌아온 바이닐(vinyl)이다. 플라스틱(바이닐)으로 만든 원반 형태의 저장 매체를 뜻하는 바이닐은 음원, 재생 길이에 따라 LP(Long Play Record), EP(Extended Record), SP(Single Record) 등으로 나뉘는데 흔히 우리가 보는 30㎝ 크기의 바이닐은 LP다. 빙그르르 도는 판에 바늘을 얹어 소리를 듣는 바이닐, 여기에 2030 MZ세대들이 꽂혔다.

도서·음반·티켓 등을 판매하는 예스24에 따르면 2020년 가요 부문 LP 판매량이 전년 대비 262.4%나 증가했으며 2020년부터 2021년 9월까지 20~30대의 구매 비중이 55%로 전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바이닐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던 이들은 향수를 찾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바이닐의 인기는 볼륨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경남에선 청음하고 살 수 있는 매장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바이닐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는 중이다.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수고로워 더 소중한 음악

수십 수백만 곡을 언제 어디서나 손안에서 편리하게 재생할 수 있는 시대, 부피가 크고, 듣고 싶은 곡이 있는 음반 전체를 사야 하며, 플레이어와 오디오까지 마련해야 하고, 한 면을 다 들으면 뒷면으로 넘겨야 하는 번거로운 바이닐이 왜 인기를 얻는 걸까. 바이닐에 빠진 이들은 하나같이 그 수고로움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갖고 있던 김창완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LP판을 우연히 보면서 LP를 사게 됐다는 서고운(37·창원시 마산합포구 평화동)씨는 “듣기 전 턴테이블을 세팅하고 원하는 곡 위에 카트리지를 옮겨야 하는 수고로움 덕분에 음악을 허투루 듣는 게 적다고 느낀다”며 “특히나 요즘처럼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휙휙 넘기곤 하는데 턴테이블은 그러기 힘들다. LP를 고르고 주문해서 받아보기까지의 수고로움도 있으니 그 음반을 더욱 소중히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바이닐은 손상이 가면 음질에 문제가 생기는 만큼 조심스레 다뤄야 하고, 보관도 중요하다. 난을 닦는 선비의 마음으로 때때로 극세사 타올에 알코올을 소량 묻혀 표면 먼지를 닦아내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정민홍(32·통영시)씨는 “바이닐을 보호하기 위해 알판을 종이 커버로 한 번 더 싸서 넣은 뒤, 앨범 전체 커버를 깨끗하게 보관하기 위한 비닐 커버도 씌워 보관하는 정성을 들인다”며 “바늘 놓을 때의 ‘뚜둑’ 하는 소리, 지직거리는 소리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한 시민이 휴대용 턴테이블로 LP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아트피스가 된 바이닐

바이닐은 단순히 음악을 담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해당 앨범이 갖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정판이 많은 특성상 갈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것도 예술작품의 의미를 부여한다. 가장 눈에 잘 띄는 앨범 표지의 아트워크를 뮤지션이 직접 디자인 하거나 예술가들에게 의뢰하기에 표지를 비롯한 커버 디자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또한 흔히 알고 있는 진한 검은색 판에서 벗어나 투명, 빨강, 연보라, 노랑 등 알판의 색깔에 변화를 주고 알 중심의 공간에도 프린팅을 넣어 장식한다. 드물게는 판의 모양까지 하트 등으로 바꾸면서 안에 든 음악의 주제를 증폭시키고, 뮤지션의 이미지,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끔 만든다. 손바닥 만한 카세트 테이프나 CD보다 크고 폭이 30㎝인 앨범커버는 큼직한 크기 덕에 액자처럼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는 장식품으로서 기능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실내 생활이 많아지면서 턴테이블과 바이닐들은 자신만의 취향과 무드를 드러내주는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는 것.

한지은(26·창원시 성산구 남양동)씨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앨범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데, CD플레이어와 턴테이블 모두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테리어 면에서 더 돋보이는 턴테이블을 선택한 것도 있다”며 “CD플레이어보다 관리가 어려운데, 취향에 들이는 정성이기 때문에 불편이 오히려 낭만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LP의 매력은 희소성이라고 생각하고, 컬러판이나 한정판은 미리미리 소식을 받아뒀다가 인기 가수 콘서트를 예매하듯 빠르게 구입해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 중앙동 ‘위스끼’./위스끼/
창원 중앙동 ‘위스끼’./위스끼/

창원 중앙동 ‘위스끼’./위스끼/

◇늘어나는 LP의 공간

창원 해거름, 드럼, 뮤직파라디소, 뱅뱅LP음악카페, 이코노피자, 양산 뮤직앤비어 등 LP가 가득 꽂혀 있고 DJ부스가 있는 전통있는 LP바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LP바, LP카페가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진주 LP바 르몽트뢰가 뉴 LP바의 포문을 연 바 있고, 창원 상남동에서는 지난해 5월 에일리언레코드바가 등장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창원 도계동에는 로스터리 바이닐 카페 브렙커피(brepp coffee)가 문을 열었으며, 올해 8월에는 창원 중앙동에 LP를 감상할 수 있는 위스키바인 ‘위스끼(WESUKKI)’가 오픈했다. 이곳들은 LP를 듣고 음악을 공유하며, LP를 빌려주거나 정보를 나누는 거점이 된다.

창원 상남동 ‘에일리언레코드바’
창원 상남동 ‘에일리언레코드바’

창원 상남동 ‘에일리언레코드바’

에일리언레코드바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음료 서비스보다 음악에 집중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광수(32) 씨는 한영애, 세또래, 공일오비 같은 우리나라 가요에서부터 최신 팝, 재즈와 일본·브라질 등 세계 음악까지 다양한 범주의 LP를 수집하고, 때에 맞는 음악을 선곡한다. 가끔 외부 DJ를 초빙해 음악을 틀어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그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콘셉트로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가장 기본은 빈티지 하이파이에 대한 이해와 세팅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손님들께 들려드리는 일인데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 쉽지 않았다”며 “오래된 음악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을 즐겁게 믹스·플레이하며 공간을 운영했던 모습을 가장 좋아해 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그는 “어떤 음악을 우연하게 듣게 되어 좋아하게 되고 그 음악을 디지털 음원이 아닌 LP판으로 소장하여 평생 아날로그 사운드로 들을 수 있다는 의미 자체로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LP문화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한순간에 식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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