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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16) 김해 마르떼 마네홀

지역과 사람과 예술의 ‘공존 공간’

기사입력 : 2021-10-19 20:51:03

최근 극한 경쟁에 몰린 현대인들의 상황을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와 결부시켜 게임을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치열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 같아 드라마를 본 뒷맛이 참 쓰다. 곤궁한 살림살이의 고된 인생을 살아가느라 각자도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즘, 지역 예술계에서 ‘공존’을 외치는 공간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가고 찰나와 같은 가을의 어느 날, 공존의 예술을 꿈꾸는 김해의 하우스 콘서트 전문공연장 ‘마르떼 마네홀’을 찾았다.

‘마르떼’라는 간판이 있는 4층짜리 건물 입구에 서자 커다란 나무에 깎아서 입체 형상을 만든 문이 벌써 예술공간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마네홀을 마주할 수 있다. 마네홀의 뿌리인 문화예술기업 ‘마르떼’를 운영하고 있는 김세훈(41) 대표가 이 공간을 처음 구상한 건 2016년이다.

마르떼 마네홀 무대. 큰 공연장에서 느끼기 힘든 악기 선율과 연주자의 표정이 생생히 전달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르떼 마네홀 무대. 큰 공연장에서 느끼기 힘든 악기 선율과 연주자의 표정이 생생히 전달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해 하우스 콘서트 전문공연장 ‘마르떼’
김해 하우스 콘서트 전문공연장 ‘마르떼’

음악교사로 10년간 재직한 김 대표는 “거창한 뜻을 품고 나온 건 아니고요.(웃음) 음악을 하는 제자들은 늘어나는데, 무대에 설 기회가 좀처럼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듬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을 꾸렸다. 독일의 프리츠 외데의 ‘모든 시민이 함께하는 예술’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지속발전 가능한 예술을 지향하며 ‘공존의 예술을 통한 예술의 공존’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현재 오케스트라 2개, 뮤지컬단 2개, 무용단, 밴드, 클래식 앙상블 등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예술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지역 학생들이 주인공을 맡은 3·15의거 60주년 기념 창작 뮤지컬 ‘화요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간 17개의 뮤지컬을 제작했고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등크고 작은 기념식을 진행하는 회사로 규모가 커졌다. 이 밖에도 교육사업과 공연기획 제작, 공연장 운영, 콘텐츠 제작, 디자인 사업 등 문화예술관련 사업을 총괄, 운영한다. 김 대표는 공연 기획부터 SNS 홍보, 포스터 제작까지 ‘가내수공업’이 가능하다며 농을 건넸다.

문화예술기업 ‘마르떼’ 운영 김세훈 대표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 설립해
모든 시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예술 지향
예술단 운영·뮤지컬 제작 등 규모 키워

지난해 공연장으로 새롭게 꾸민 마네홀
무관중 공연부터 클래식 연주자 초청까지
진입 장벽 허물고 하고 싶은 음악 들려줘
지역 음악인·지역민들 위한 교육 추진도

김해시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네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마르떼/
김해시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네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마르떼/

지난해 추가로 같은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마네홀’을 새롭게 꾸몄다. 카페로도 영업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공연장으로의 쓰임을 다하고 있다. 공간에 들어서면 엔틱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가구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물음에 김 대표는 가구를 제작하는 아버지와 형님, 김 대표 세 명이 공들인 공간이라고 답했다. 테이블도 원래 있는 가구를 다리로 활용하고 전국의 돌집 13곳을 돌며 발품을 팔아 구한 돌로 상판을 덧댔다.

공간 안쪽엔 제법 큰 덩치를 자랑하는 야마하 피아노 C7이 자리하고 있다. 하우스 공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널찍하게 배치한 소파와 의자들이 눈에 띈다. 지역민들에겐 높은 클래식 음악 진입 장벽을 허물고 저변을 확대할 수 있고 음악인들에겐 하고 싶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라는 ‘둥지’가 생긴 셈이다.

3층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 사무실에 걸린 마르떼 공연 포스터.
3층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 사무실에 걸린 마르떼 공연 포스터.

마르떼의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마네홀은 지난해 코로나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영상사업부를 신설해 무관중 공연을 매주 1회 이어왔다. 최근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공연도 열고 있다. 창원대 이주은 교수가 주축이 된 ‘이주은의 레전더리 마스터피스 시리즈’ 역시 그 일환이다. 마네마르떼의 두 번째 하우스콘서트 기획시리즈로, 국내 최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를 초청해 음악인으로의 삶과 철학에 관한 이야기, 에피소드 등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어 인기다. 최대 40명까지 앉을 수 있는 이 공간의 백미는 대규모 공연장과 달리 코앞에서 연주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좋은 연주자를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심리적 거리와 지리적 상황에 따른 어려움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연주자들이 먼 곳의 공연장에 설 때는 기획과 무대의 가치가 있어야 발을 뗄 수 있는데, 그만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지역에서 예술기획을 하는 저에게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우려와 달리 참여 아티스트들의 반응은 꽤 좋다. 소규모 공연장에서 토크를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본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음악 인생을 반추하고 새로운 감회를 느끼기도 한단다. 마네홀을 더 알차게 즐기러면 멤버십에 가입하면 된다. 무료로 이름을 올리며 채널을 통해 공연 정보를 알 수 있고 공연 할인과 음료 제공 혜택도 주어진다.

마네홀 객석
마네홀 객석

건물 1층엔 현악기 제작·수리 공방인 ‘조문제스트링’이 들어와 있다. 바이올린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있는 국립 현악기 제작 학교(IPIALL) 출신 한국인 1세대인 조문제 대표가 지난해 김해로 터전을 옮겼다. 공방은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영역을 넓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현악기 제작 프로그램 키트를 제작할 계획이다.

건물 1층에 있는 현악기 제작 수리 공방 ‘조문제스트링’
건물 1층에 있는 현악기 제작 수리 공방 ‘조문제스트링’

마르떼는 경남문화예술교육협동조합인 만큼 ‘교육’, ‘양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청소년 단원들에게 강사를 무료로 초빙해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연습 수당과 공간을 제공한다. 코로나 발생 전엔 독일에서 경험 많은 지휘자를 초청해 학생들과 무대에 서면서 준비하는 과정과 연주자로서의 태도 등을 경험할 기회를 선사했다.

앞으로도 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청년들을 위해 역할을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최근 경남지역 음대에 입학지원자가 모집정원에 못 미치는 미달 사태가 속출했는데, 함께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라며 “엘리트 음악 전공자가 없으면 방과후 선생님, 생활예술인 등을 양성할 수 없고, 이는 결국 문화 향유 기회가 줄어 시민들에게 영향이 갈 수 밖에 없죠”라고 설명했다.

지역민들을 위한 ‘시민 오케스트라’ 사업과 ‘못다한 꿈을 이루어 드립니다’ 등도 추진한다.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한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무대에 서도록 하는 이 과정을 다큐 등으로 제작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지역 예술가들이 편히 노크해줬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합심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교육을 통해 좋은 음악인을 많이 발굴하고 문턱 낮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죠”라고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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