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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기자의 판읽기 (6)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1심 판결문 보니

보이스피싱인 줄 알면서도… ‘돈 배달’만 해도 실형 선고

기사입력 : 2021-11-04 20:39:25

독자 여러분들 한 번쯤 들어보셨죠?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이름, 바로 ‘김미영 팀장’ 말입니다. 김미영 팀장이란 ‘조직’을 만들어 사기행각을 벌여온 총책이 9년 만에 필리핀에서 붙잡혔는데요, 글쎄 잡고 보니 여성이 아니라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고 예전 직업은 사이버수사팀 경력이 있는 경찰이었습니다. 성은 박씨였고요.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죠?

◇김미영 팀장 조직은= 건장한 남성이자 실제로는 박씨 성이었던 김미명 팀장, 그는 지난 2012년 필리핀에 콜센터를 만들어 전화금융사기를 벌였고, ‘꼬리’격인 조직원들은 지난 2013년 국내에서 잇따라 검거됐습니다. 하지만 우두머리 박씨를 포함한 몸통격의 주요 인물들은 해외에서 치밀하고 끈질긴 도피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경찰은 필리핀에 수사관을 파견해 박씨 측근 대포통장 수집책을 붙잡은 데 이어 얼마 전 박씨도 2주 만에 붙잡았습니다.

김미영 팀장 조직은 금융기관 사칭형 범죄 수법이라 불리는 ‘1세대 보이스피싱’의 대명사입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신용불량자 등 돈이 필요해도 돈을 구하기 막막한 사람에게 ‘저금리 대출 30분 만에 해줄 수 있다’고 스팸문자를 보냅니다. 급전이 필요한 분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겠죠? 전화를 걸어 대출이 가능한지 물어보게 되고, 그러면 금융기관 직원인 척하는 콜센터 담당책이 “대출이 가능하긴 한데 기존 대출금을 갚아야 대출 한도가 나와 대출이 가능하다”, “선이자와 보증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현금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속은 피해자들이 만나게 되는 조직원이 바로 인출책이나 현금수거책입니다. 피해자가 입금을 하거나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현금수거책에게 돈을 전달하면 이들은 잠적해버리는 겁니다.

◇현금수거책 3명의 공통점은?= 전화금융사기 수사에 정통한 여러 경찰에게 물어봤더니, 보이스피싱 조직에는 여러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위계질서가 있고, 총책은 대부분 해외에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이들 조직은 조직원들이 한국, 중국 등에 흩어져 있는데다 모집책, 인출책, 콜센터, 현금수거책 등으로 업무 분담이 매우 체계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조직원들 간에도 서로 모바일 메신저로만 연락을 주고 받고 얼굴도 모른다는 겁니다.

오늘 만날 판결문 속 피고인 3명이 모두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기 범행을 저지른 현금수거책들로 이런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1단독 김민상 부장판사는 전화금융사기 범행의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해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진 A(65)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 20일 한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으로부터 현금을 수거해 입금하는 일을 할 것을 제안 받았는데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와 카카오톡 채팅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 지시에 따라 범행지로 이동해 피해자에게 은행 직원 등을 사칭하고 현금을 받아오는 것이 A씨 역할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는 OO은행 박상호 팀장, △△은행 강수진 대리 같은 콜센터 담당책이었고요. A씨는 그 무렵부터 다음 달 초순까지 9명의 피해자들로부터 1억6502만원을 가로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무통장 입금 방식으로 돈을 전달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A씨의 역할은) 일반적인 채권추심 업무와는 상이하고, 수거금액의 일부를 그 대가로 바로 취득한 후 나머지 금원을 성명불상자가 지정하는 계좌로 무통장 송금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업무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현금수거 업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들과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할 것을 순차 공모했다”고 판단하면서 “대부분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고, 처음에는 구인광고에 속은 측면이 있으나 범행을 인식한 후에도 계속한 점, 이 사건의 주범은 검거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B(35)씨에게도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B씨도 지난 5월 중순께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로부터 “대출이 안되는 고객들에게 대환으로 대출을 해주는 회사이다. 고객들로부터 현금을 전달받아서 입금하면 된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B씨는 이 이름을 모르는 자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의심했는데도 일당을 받을 목적으로 제안을 수락하고 현금수거책 역할을 맡았군요.

B씨는 이 무렵 경남, 부산, 전남 등의 아파트 정문, 카페 앞, 교회 앞, 지하철 출구 앞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총 12회에 걸쳐 2억420만원을 건네받아 가로챘습니다. 이 범행 역시 주범은 검거되지 않았군요.

일자리가 필요했던 걸로 보이는 C(32)씨도 실형을 면치 못하게 됐습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 안좌진 판사는 보이스피싱 범행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한 C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C씨는 지난 6월 초순께 아르바이트 구인광고를 검색하던 중 “채권 회수 업무를 수행하면 하루 10만원가량의 일당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에 솔깃해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리곤 채권회수팀 직원을 사칭해 지난 6월 17일 창원시 성산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피해자 D(24)씨로부터 2000만원을 건네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C씨는 항변했는데요. 그는 “단순한 현금수거 업무라고 인식하고 행위를 했을 뿐,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안 판사는 “C씨는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의 일정 부분을 수행하는 것임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면서도 피해자들로부터 피해금원을 수령함으로써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에 가담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금융사기단의 현금수거 업무 제안 수락
카카오톡 채팅 지시 따라 범행지로 이동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현금 받아와

창원지법, 수거책 3명 징역 6월~2년 실형
“범죄 가담해 불특정 다수에게 손해 끼쳐”
대법원 양형기준 ‘일반사기보다 가중처벌’

금융기관 직원에 현금 전하라는 요구는
무조건 보이스피싱 범죄로 의심해야
전화 끊고 금감원 1332나 112 신고를

◇보이스피싱 범죄엔 ‘엄벌’… 예방책은 ‘무조건 의심’= 보이스피싱은 ‘사기’에 해당됩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죄 판결문을 주로 보면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로서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중대한 경제적 손해를 가하고, 피해회복 또한 용이하지 않은 특성이 있어 그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큼”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이러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에 단호한 편으로 보이는데요,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더라도 보이스피싱의 경우 일반 사기보다 1.5~1.8배 가중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피해회복이 안 됐을 경우 더 엄하게 보는 건 물론이고요.

최근에는 A, B, C씨처럼 ‘현금수거책’에게도 중형이 선고되고, 1심의 판단이 2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창원지법 제3-2형사부(재판장 김기풍 부장판사)는 지난 5월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해 피해자들로부터 수천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사기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E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는데요. 김 부장판사는 “보이스피싱 범행 현장에서 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수령하는 현금수거책은 전체 보이스피싱 범행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죄 피해금액이 연말에는 1조원에 가깝고, 경남에서도 200억원에 육박할 거란 우려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드러났는데요. 특히 A, B, C씨 같은 현금수거책에 의한 대면편취형 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보호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라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또 해외주범 검거는 전체 검거 인원의 2.1%에 불과하다고 하죠. 경찰은 중국 등 해외로 나간 돈과 범인을 찾는 일에 좀 더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겠습니다. 그전에 피해를 당하지 않게 조심하는 게 가장 좋겠지요?

경남경찰청 전화금융사기 전담수사팀 전문수사관 홍재호 경위는 “시민들은 금융기관 직원에게 현금 전달을 요구하는 경우 무조건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의심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울 땐 전화를 끊고 금융감독원 1332나 경찰 112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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