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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 시즌3] (8) ‘아이스팩 줄이기’ 나선 사람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환경오염 주범’ 잡는다

기사입력 : 2021-11-24 21:32:49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젤리 형태의 고흡수성수지(SAP) 아이스팩.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다량의 물을 흡수할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기저귀 등에 사용되며 물과 함께 냉매로 사용 시 얼음에 비해 냉기가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쉽게 자연분해되지 않고, 매립하거나 하수로 배출할 경우 직접적으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환경부는 냉장·냉동식품의 배송 주문량이 늘어남에 따라 2016년 1.1억개(3.3만t)에 이르던 아이스팩 생산량은 2019년 2.1억개(6.3만t)로, 약 2배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스팩에 고흡수성수지 대신 물 또는 물과 전분·소금을 배합한 친환경 냉매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 사용 비율이 높은 실정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냉장·냉동식품 64개를 온라인으로 실제 구입하고 동봉된 아이스팩 57개를 조사한 결과,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22개(38.6%), 친환경 아이스팩은 35개(61.4%)로 확인됐다.

이런 현실 속 아이스팩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을 재사용하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젤 아이스팩 대신 얼린 생수병이 딱~


통영서 수산물 쇼핑몰 운영 유호근씨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에 아이디어 제공

보냉 능력 비슷·소비자 반응도 긍정적


◇젤 아이스팩 대신 얼린 생수병 사용했어요

“아이스팩이 담긴 냉동 수산물 택배를 보낼 때마다 환경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여름철 시원한 물을 마시기 위해 냉동시켜 두는 생수병을 보냉재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통영에서 수산물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유호근 씨는 아이스팩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젤 아이스팩 대신 얼린 생수병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를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에게 전달했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0월 얼린 생수를 보냉제로 사용하는 실험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0월 얼린 생수를 보냉제로 사용하는 실험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이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생수병을 보냉재로 쓰기’라는 주제로 ‘경남 2021 사회혁신 실험(리빙랩) 프로젝트’에 공모해 지난 5월 선정되며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 기간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이다.

단체는 얼린 생수병의 보냉 능력 검증과 얼린 생수병을 받은 소비자 반응 등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얼린 생수병의 보냉 능력을 기존 젤 아이스팩 보냉재와 비교한 결과 보냉 능력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시간이 지났을 때 온도 측정을 해보니 젤 아이스팩을 사용한 택배 상자 내부는 21.0도, 얼린 생수병을 넣은 상자는 19.4도였다. 48시간 뒤에는 젤 아이스팩을 넣은 상자는 22.1도, 얼린 생수병을 넣은 상자는 22.0도를 기록했다.

단체는 “요즘 택배는 24시간에서 48시간 이내에 도착하기 때문에 택배를 48시간 이내에 신선하게 전달하는 목표는 얼린 생수병으로도 충분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소비자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단체에 따르면 얼린 생수병 택배를 받은 소비자 2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9%가 젤 아이스팩 대신 생수병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97%는 생수병이 담긴 택배 박스를 계속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험 과정에서 개선점도 발견됐다. 냉동 생수병을 보냉재로 사용해 보니, 젤 아이스팩에 비해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혜원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번에는 소규모 수산업체와 함께 실험을 진행했는데, 내년부터는 더 큰 규모의 업체와 협업을 통해 생기는 문제점을 찾고 보완하면서 기존 생수병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생수병 보냉재를 제작하려고 한다”며 “최종적으로는 젤아이스팩 사용 규제 등 환경을 위한 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팩 재활용으로지구 살리고 이웃 도와요~


창원 진해구 덕산동 새마을부녀회서 시작

아파트에 수거함 설치, 세척 후 시장에 전달

지난해 지자체서 도입… 16만여개 재사용


◇아이스팩 재사용을 통해 지구도 살리고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에 도움도 줍니다

“살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스팩이 많이 발생하는 걸 인지하게 됐죠. 주변에 어떻게 버리냐고 물어보니 ‘변기에 버린다’, ‘세면대에 버린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충격 받았죠.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미세플라스틱이잖아요.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감 있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떠오른 게 ‘아이스팩을 재활용하자’였죠.”

현재 창원시에서는 젤 형태의 폐아이스팩 재활용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창원시는 지난해 10월 진해구 지역을 시작으로, 올해 4월부터는 마산 회원·합포구 권역으로 확대했으며 7월부터는 창원 의창·성산구 권역으로 확대해 진행 중이다. 시는 지금까지 창원 지역 91곳에 폐아이스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했으며, 지역자활사업과 연계해 아이스팩 수거-선별-초음파세척-자외선살균소독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재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처리된 아이스팩은 전통시장, 식품 유통업체 등 필요한 곳에 무료로 공급된다. 사업 시행 시점부터 지난달까지 총 22만7530개의 아이스팩을 수거했으며, 이 중 16만4499개가 재사용됐다. 재사용률은 72% 정도다.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 새마을부녀회가 아이스팩 재활용 활동을 펼치고 있다./황보경옥 덕산동 주민자치위 교육환경문화분과장/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 새마을부녀회가 아이스팩 재활용 활동을 펼치고 있다./황보경옥 덕산동 주민자치위 교육환경문화분과장/

해당 사업의 시발점은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 새마을부녀회가 2018년 말부터 준비한 ‘아이스팩 재사용을 위한 분리수거’였다. 당시 덕산동 새마을부녀회장이었던 황보경옥 덕산동 주민자치위원회 교육환경문화분과장은 젤 아이스팩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활동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동네 아파트 3곳에 수거함을 설치해 아이스팩을 모은 뒤 부녀회원들이 씻어서 인근 시장에 전달했다. 2019년에는 창원시의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며 진해구의 각 동 행정센터 앞에도 수거함이 생기는 등 아이스팩 재사용 활동이 구 단위로 확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황보경옥 덕산동 주민자치위원회 교육환경문화분과장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주부가 생각한 사소한 아이디어에 한 사람 두 사람씩 모여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면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들의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지자체가 나서서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을 체계적으로 수거해 환경오염도 막고, 자원 절약도 할 수 있게 돼 개인적으로 자부심도 생기고 뿌듯하다”며 “현재는 행정복지센터 위주로 폐아이스팩 전용 수거함이 설치돼 있는데, 앞으로는 플라스틱처럼 체계적으로 분리 배출할 수 있도록 아파트 단지 내에도 아이스팩 수거함이 설치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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