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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감 홍시- 고승하(아름나라 이사장)

기사입력 : 2021-11-30 20:20:24

감 홍시는 빨간 얼굴로 날 놀린다./돌을 쥐고 탁 던지니까 던져보시롱, 던져보시롱,/헤헤 안 맞았지롱 이런다./요놈의 감 홍시 두고 보자, 계속계속 돌팔매질을 해도/ 끝까지 안 떨어진다. -〈감 홍시〉 경북 울진 온정초등 4학년 황도곤 글, 1995년 고승하 작곡.

내가 어릴 때는 감나무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마을의 부잣집 밭둑에서 약 올리듯 익어가는 홍시를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저렇게 키가 크고 늠름한 감나무가 우리 집에도 한 그루 있었으면…’ 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만 나이를 먹고 말았다.

그런 내가 20여년 전 우연히 황도곤 어린이가 쓴 ‘감홍시’라는 글을 보았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다시 어린 날로 돌아간 듯 감동이 일렁거렸다. 1930년대 시문학파의 기수였던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겄네’의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는 구절과 견줄 만큼의 감흥이었다.

나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어린이 중창단 〈아름나라〉를 조직하여 활동하며 아이들의 글에 노래를 부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노래 역시 그때 만들어졌다. 매나리 토리로 전통 가락을 살리고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탈춤동작을 넣어 율동도 만들었다. 한삼을 팔에 걸치고 노래 부르면서 탈춤 흉내를 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지 어른들의 입길에 제법 오르내렸다.

글쓰기 연구회를 이끄시는 이오덕 선생님께 이 노래를 보여 드렸더니 ‘계속계속’이라는 말을 ‘자꾸자꾸’로 고치라고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고, 또 어느 분은 감 홍시의 시자가 감이라는 뜻이라시며 겹침 말이라고 지적해 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글 쓴 어린이가 평소에 늘 쓰는 말일 것이고 적어도 경상도 토박이 제 귀에도 너무 자연스런 말이라 그냥 쓰기로 했다.

어느 날 유치원 원장이라는 분이 이 노래를 듣더니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욕설과 돌팔매질을 하는 이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어쩌냐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놀랬다. 노래가 증오를 부채질해서 안 된다고, 세상에나 증오까지나? 많이 배운 어른들이 무섭다. 이런 분들이 이끌어 가는 세상이 무섭다.

고승하(아름나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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