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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기자의 판읽기 (8) 김해시복지재단 직원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

거듭된 음주 뺑소니에 안타까운 사망… 판사는 철퇴 내렸다

기사입력 : 2021-12-26 21:06:13

1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창원지방법원을 출입하면서 여러 재판을 직접 취재하고 판결문을 접했습니다. 이따금씩 민사 소송이나 행정재판을 취재할 때가 있지만,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법원 출입기자들은 형사 재판을 주로 취재하고 기사화합니다.

기실 수많은 판결문 가운데 기자들이 건져 올리는, 그러니까 ‘기사가 될 만한 판결문’은 자극적인 강력사건이 주를 이룹니다. 매일 강력사건 판결문 속에 갇혀 그중에 더 강력한 걸 골라내는 일이 많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도 흉악범죄에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쉽게 분노하는 일도 잘 없고요.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도 눈물이 잘 나지 않기도 하고 말이죠.(저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8번째 도 기자의 판읽기(판결문 읽어주는 기자)에서 함께 읽을 판결문은 그러나 저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을 너무나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경우 끓어오르는 분노는 물론이고 판사가 쓴 양형이유를 읽으면서는 한참 동안이나 눈물이 흘러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원고지 3매 분량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면서도 마감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로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로 1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해시복지재단 직원의 죄질 나쁜 범행에 관한 1심 법원의 판결입니다. 지난여름부터 수사기관에서의 수사진행 상황과 판결 결과를 중심으로 경남신문 지면으로도 알려드린 바 있는데, 오늘은 기소 뒤 1심 판결문에 담긴 내용을 여러분들께 더 소상하게 알려드리려 합니다.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음주 회식을 한 뒤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것도 모자라 연이어 교통사고를 내고도 달아나기 바빴던 피고인, 그리고 이 피고인의 용서받기 힘든 범죄로 핏줄을 잃은 남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범죄가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법원 1심서 40대 운전자 징역 10년 선고
검찰 구형 6년보다 4년 더 높게 판결

1차 접촉사고 후 시속 132㎞ 과속 달아나
2차 사고 연쇄추돌로 60대 사망·2명 중상

2002년 음주운전 벌금·2004년엔 사망사고
반복된 음주 사고 ‘죄질 극히 불량’ 판단

박지연 판사 “스스로 초래한 참담한 결과
상응하는 무거운 처벌 필요해 중형 선고”

◇잘못된 선택이 부른 비극

창원지법 형사3단독 박지연 판사는 지난 2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사·도주치상·위험운전치사 등) 등의 혐의로 기소된 A(41)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10년을 내렸습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6년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A씨는 김해시복지재단 소속 직원으로 지난 8월 20일 저녁 재단 동료 2명과 함께 셋이서 술을 마신 뒤 운전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당시 김해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였는데요. 오후 6시 이후 2명 이상 집합을 금지하던 시기였는데, 어겼군요. 총괄 팀장까지 포함된 3명의 이날 ‘불법 회식’은 오후 8시 30분께 마무리됐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직원들과의 저녁회식에서 반주를 했다”고 한 A씨는 운전대를 잡고 35분쯤 뒤 9시 5분께 김해시 흥동 왕복 6차선 장유방면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하다 반대 차선에서 앞서 주행 중이던 투싼 차량을 자신의 그랜저 차량으로 들이받았습니다. 사고를 인지한 A씨, 오히려 속도를 높여 달아났습니다. 피해차량인 투싼 차주가 경적을 울리며 뒤쫓아 가자 이를 무시하고 더 속도를 높이기까지 합니다.

2분 뒤 결국 더 큰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제한속도 시속 60㎞ 구간에서 132㎞까지 질주하며 도주하다 명법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세라토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는 2차 사고를 낸 겁니다. 큰 충격에 밀린 쎄라토 차량이 앞에 있던 XM3 승용차까지 충격했고요.

투싼을 들이받고 한번 달아났던 A씨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예상하시다시피 또 달아났습니다. 이번엔 차를 버린 채로 말이죠. 이날 2차 사고로 세라토 승용차 뒷좌석 탑승자 60대 B씨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B씨의 가족 C씨와 XM3 승용차 운전자 D씨 등 2명도 각각 전치 6주와 3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A씨는 사고 발생 1시간여 뒤에 경찰에 자수했는데, 경찰에 “사고 후 더 큰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자수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자수 당시 음주측정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176%. 면허취소 수준인 0.08% 이상을 훌쩍 넘은 만취 상태였습니다. 이러고도 회식에서 반주한 것이라니….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검찰 구형보다 더 높은 선고 이유 보니

박지연 판사는 양형 이유를 통해 A씨의 거듭된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마음을 울린 박 판사의 언급 직접 한번 볼까요?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위반하여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술을 마신 후에 운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1차 사고 발생 후 무책임하게 도주하지만 않았더라면 2차 사고 발생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리한 정상들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에게는 스스로 초래한 참담한 결과에 상응하는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므로, 검사의 구형(징역 6년)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기로 하여….(후략)”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A씨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지난 2002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로 벌금형 처벌을, 2년 뒤 2004년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2004년 전과는 음주운전 중에 보행자를 사망하게 한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박 판사도 이 대목을 짚으며 “또다시 동종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도 더욱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의 구형보다 더 중한 형을 내린 이유입니다.

다른 법률가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제가 법률 자문한 창원지역 변호사들도 박 판사의 선고를 사회적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 보고 ‘엄단’이라 평가했습니다.

오근영 변호사(경남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는 선고 다음 날인 24일 서면을 통해 의미를 짚어줬습니다. 오 변호사는 “양형의 이유를 통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단순히 과실에 의한 결과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엄격해지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반성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 일반적으로 검사의 구형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형 의견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고 분석했습니다.

강정은 변호사도 같은 날 서면을 통해 “10년 이전 전과이긴 하나 집행유예 전과까지 있는 자가 동종 범행을 반복했고, 음주 사망사고를 낸 이후에 반복적으로 음주 사망사고를 낸 점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법원이 엄단한 것이다”고 짚어줬습니다.

◇취업 준비하는 딸 보러 간 엄마 참변… 남은 가족의 고통은 누가 치유하나

숨진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판결문 속 양형이유 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박 판사의 언급 함께 보겠습니다.

“거듭된 피고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타지에서 취업준비 중인 딸을 응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피해자 B씨는 아무런 잘못 없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고, 유족들은 갑작스럽게 소중한 아내와 어머니를 잃게 되었는 바, 특히 망인의 자녀들은 C씨의 위중한 상태로 인해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하였고, 그저 어머니가 사고 당시 의식이 없어 고통 없이 돌아가셨기를 바라는 등 사고 이후 현재까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정신적 충격과 슬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경남신문 한유진 기자는 A씨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망사고가 방역수칙 위반에서 기인한 사고였다는 걸 대중에 처음 알렸습니다. A씨는 사고가 일어나고도 한 달이 더 지난 9월 29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파면당했습니다. 같이 회식한 2명은 각각 정직, 감봉 조치를 받았는데, 한 기자의 취재내용을 보면 언론 보도로 사건이 알려지기 이전에 재단은 내부 조사에서 이 2명의 징계를 경징계인 ‘견책’으로 판단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이 폭로 보도 이후 사태가 커지자 재단 수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거듭 잘못된 선택을 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파면당한 A씨는 이제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고요.

그러나 그 어떤 말로도, 그리고 엄벌로도 유족이 입은 충격과 슬픔을 온전히 위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쉬이 헤아리기조차 힘든 고통을 아직도 겪고 있을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끈질긴 보도로 진상을 세상에 알린 한유진 기자와 죄질 나쁜 범행을 엄단한 박지연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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