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대-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안되면 지역경제 못 버텨”

[기획] 2022 대선 D-40 경남민심 들어보니 1부 지역이슈 ⑬ 경영 위기 중소기업

기사입력 : 2022-01-27 20:54:03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납품단가 인하 등 구조적인 문제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으면서 고착화됐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대기업과 1·2차 벤더를 비교하면 영업이익률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하청업체로 내려가면 갈수록 영업이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직원들의 급여차 등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김해에서 기계류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1차 벤더로, 1차에서 2차 벤더로 내려갈수록 납품단가 인하가 거세져 이익률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며 “이런 과정에서 일 잘하는 직원은 대기업에 가려고 하니 인적자원에서도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납품단가 등 구조적 폐단 심각
원자재값·최저임금·주52시간 등
경영 부담요인 늘며 격차 가속화

“중기 도태는 결국 대기업 도태
노동정책 유연화·규제 개선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달라”


자료사진./픽사베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자재 가격, 물류비 상승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 등 경영 부담 요인이 추가되면서 격차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중소기업계는 이러한 생태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기업 도태에 이은 경제 쇠락 위험이 크다며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해결과 노동·고용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9년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688만8435개로 전체 기업의 99.9%에 달한다. 중소기업 종사자 역시 1744만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2.7%에 이른다. 최근 5년(2015~2019년) 동안 대기업은 41만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중소기업은 140만개의 일자리를 늘렸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며 국민생활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매출액은 2732조1000억원(48.7%)으로 전체 기업 매출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0.1%의 대기업이 매출액 절반 이상을 가지고 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한계기업(재무구조가 부실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0년 7.1%이던 중소기업 한계기업 비중은 2013년 11.9%, 2019년 20.77%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창원의 한 뿌리기업 대표는 “대기업 단가 담당자만 바뀌면 인하 압박에 시달린다. 울며 겨자 먹기로 깎아서 찾아가면 급여 인상이나 성과급 잔치를 하고 있다. 갓 입사한 신입들이 5000만~6000만원의 연봉을 가져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50~60대 숙련공이 대부분인 우리 직원들에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이 대표는 “잘 나가던 일본 조선업이 쇠퇴 이후 재기하기도 힘든 이유는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중소기업 도태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대기업 도태로 연결된다. 20년 뒤에 우리 같은 회사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걱정된다”고 한숨 쉬며 “대선 후보들이 이런 실태를 인지하고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의 경영난에 대해 업계에서는 납품단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우선적 과제로 꼽는다. 지난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철강·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비용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도내 조선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이 쏟아진 바 있다.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2009년 하도급법에 원자재 상승 납품대금 조정이 신설돼 2011년 중소기업협동조합과 2020년 중기중앙회가 각각 개별 기업 대신 납품대금 조정을 대리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기업마저 대기업으로부터 거래 중단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신청을 꺼리는 실정이다. 때문에 중소기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대금을 의무적으로 조정하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경남본부 이상욱 부장은 “대기업 중심의 정책 구조가 우리나라 경제의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반면 대기업 수출 편중과 대·중소간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로 인해 매출과 이익률의 격차가 커지면서 중소기업 경영 악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과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발적인 상생 노력,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고용의 균형 필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주52시간 근무제, 5인 미만 소상공인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적용 요구 등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11월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600곳(제조업 300·비제조업 300)을 대상으로 실시한 ‘20대 대통령에게 바라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의견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반영돼야 할 정책 질문에 노동개혁이 1위와 2위로 뽑혔다.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사항은 ‘주 52시간제 개선 등 근로시간 유연화(49.3%)’ 였고, 그 뒤를 ‘최저임금 산출 시 중소기업·소상공인 현실 반영(44.0%)’이 차지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주52시간제 확대 시행 등이 중소기업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 같은 정책 시행에 불만도 높다.

도내에서 주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인은 “기업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역대 이 같은 규제가 없다고 할 정도다. 규제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규제를 지키려고 하니 지킬 공간도 없고 자금도 없다. 규제에 대비하기 위한 컨설팅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규제로 인해 외곽으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봐가면서 (규제와 정책을 시행) 해야지”라고 푸념했다.

300인 미만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시행한 주52시간제 시행 실태 조사에서도 54.1%가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으며, 제조기업 2곳 중 1곳은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크다고 대답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계 역시 주52시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급격한 수요 폭발에 대응해 주52시간제, 대체근로·탄력근로제를 산업 현장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며 ”글로벌 아웃소싱과 가치사슬 급변에 따른 리쇼어링을 견인할 다양한 정책·노동의 유연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정책 유연화와 함께 중소기업계에서는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가속에 대비할 중소기업 지원 강화, 기업승계제도 현실화, 중소기업협동조합 역할 강화 등도 요청하고 있다.

황선호 경남중소기업회장은 “대선 후보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해 중소기업이 담합 걱정 없이 공동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등 각종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보완과 최저임금제도 개선, 납품단가 제값 받기 등 현안 과제를 해결해 중소기업이 성장·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황 회장은 “현행 주52시간제와 관련해 주당 12시간의 경직적인 초과근로시간 한도를, 월 52시간 한도로 바꿔 업무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탄소중립위원회 보고서에 담겨 있는 납품단가 연동제와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도를 시급히 도입해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부담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정민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