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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2022 현장] ⑧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차 타고 배 타고…‘아동학대 없는 세상’ 위해 오늘도 강행군

기사입력 : 2022-04-06 21:14:00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50분 통영여객선터미널. 이곳에서 만난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4년차 상담원 이윤미(가명)·2년차 상담원 김정수(가명)씨는 이날 학대가정 ‘사례관리’를 하기 위해 터미널로부터 배로 50분 거리의 통영의 한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학대 가정을 방문해 상담을 마치고 여객선을 타기 위해 걸어 나오고 있다./성승건 기자/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학대 가정을 방문해 상담을 마치고 여객선을 타기 위해 걸어 나오고 있다./성승건 기자/

◇숨가쁜 상담원 하루=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동행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 조사를 하고 그 이후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사례를 관리하는 게 상담원들의 일. 두 상담원이 근무하는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에 있다. 이날 이들은 한 사례 관리를 위해 1시간 넘게 차로 이곳에 온 뒤 다시 배로 50분을 더 들어가 학대 가정을 방문해 상담하고, 거꾸로 50분남짓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또 다른 상담을 마치고 창원까지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다시 복귀했다. 배에서 내려 이들이 개입해야 할 가정에 걸어가는 시간 20분과 상담 2시간을 포함해 꼬박 6시간을 이날 한 가정에 쏟은 것이다.

오전 11시 30분. 배에서 내린 두 상담원과 취재진은 통영의 한 섬 선착장에 도착한 뒤 다시 10분 남짓 걸어 사례 가정에 도착했다. 어렵고 힘들게 학대 가정을 찾지만 정작 이들은 ‘반갑지 않은 손님’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날 찾아간 집은 아버지의 방임으로 아동들이 장기간 피해를 겪었고, 이후 지자체와 기관이 개입해 분리 조치를 해놓고 반년 가까이 관리하고 있는 가정이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그룹홈에서 지내고 있는 피해 가정 아동과의 상담을 위해 들어가고 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그룹홈에서 지내고 있는 피해 가정 아동과의 상담을 위해 들어가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아동학대 현장조사, 보호 및 치료, 사례 관리, 가정 복귀 프로그램 시행 등 아동학대 개입을 위한 모든 절차를 핵심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동학대 사례에 개입하는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하나의 아동학대 사례를 위해, 더 큰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만 돌아오는 건 학대 당사자의 폭언과 폭행,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배달되는 고소장이다.

“‘아버님, 이런 말과 행동들은 학대예요’라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버럭 화를 내며 쫓아내고 폭언을 쏟아내죠.” 1시간가량 상담을 마치고 오후 1시 30분 섬에서 다시 터미널로 향하는 배에 탄 김씨가 말했다.

“오늘 찾은 가정에 해당하진 않지만 고소를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너희가 왜 우리 집안일에 개입하냐’는 거죠. 저희가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동네에 알려질까봐 더 꺼리기도 하고요.”

숨가쁜 섬 방문을 마치고 다시 터미널로 도착한 오후 2시 20분. 그룹홈에서 지내고 있는 피해 가정 아동과의 상담은 오후 3시 20분에 잡혀 있다. 1시간 안에 식사와 이동, 상담 준비를 모두 마쳐야 하기에 마음이 조급하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이들을 더 힘들게 했다. 이씨는 “현장 조사, 사례 관리, 학대 예방 프로그램 등 이들이 하는 핵심 업무가 모두 사람을 만나야 할 일이다 보니 대상자가 확진되면 만나지 못하는 등 코로나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차질을 빚는다”고 말했다. 이날도 상담해야 할 아동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만나지 못했다.

김씨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다보니 확진받지 않게끔 상담원들 스스로도 더 엄격하게 방역수칙을 지킨다.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도 식당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3시. 두 상담원은 터미널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와 차에서 늦은 점심을 대충 해결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고, 창원으로 돌아가 퇴근 시각을 훌쩍 넘긴 오후 9시께 사무실 책상불을 껐다. 두 상담원 모두 오늘 같은 사례를 30건 넘게 관리하고 있다.

사례관리 위한 숨가쁜 하루
1시간 상담 위해 섬까지 찾아가지만
“왜 개입하냐” 학대자 폭언·욕설
빵으로 늦은 점심 때우고 복귀 후엔
일지 작성 등으로 자정 넘기기 일쑤

열악한 처우에 떠나는 이들
상담원 1명당 사례관리 30~40건
종결까지 1년 이상 걸리지만
월 50시간 초과근무에 이직률 41%
대응인력 이탈, 아동에게도 피해

“긍정 변화 사례에 보람”
“높은 업무 강도·저임금에 힘들어도
욕하고 학대 부인하던 행위자
‘학대인 걸 알려줘 고맙다’ 인사에
희망으로 버티고 일합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터미널 근처에서 구입한 샌드위치를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터미널 근처에서 구입한 샌드위치를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있다.

◇열악한 처우 속 늘 ‘살얼음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학대 가정 사례 회의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신고된 아동학대 사례를 일반 사례와 심층 사례로 나누고 어떤 상담원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입해 가정 복귀까지 이끌 것인지 전략을 짜기 위해서다. 오후에는 사례관리 업무를 하거나 현장조사를 나가 아동들을 만난다. 이후 부모 상담은 대개 이들의 퇴근시간 이후인 오후 6시부터 한다. 통영·밀양·창녕 등 장거리 운전을 할 일이 많아 사무실로 복귀하는 시간은 오후 8~9시, 늦을 때는 오후 10시 넘어서일 때도 잦다. 사무실에 돌아오면 일지를 작성하고 조사 내용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하고 다음 날 회의 준비까지 하면 자정을 넘기는 날이 부지기수다.

상담원 1명당 사례 관리를 하고 있는 가정은 30~40건. 한달 내내 숨가쁘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고(지난 2020년 경남 1777건)가 늘어 관리할 사례도 비례해 늘지만, 대부분 종결까지 1년 이상 이어져야 할 사례라 업무는 계속 쌓인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가정에서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라 늘 불안하기도 하다. 법적 분쟁에 휩싸이거나 흥분한 행위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소란을 피울 때면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끼니를 자주 거르며 밤낮으로 일하지만 한달에 인정되는 초과근무는 15시간이 고작이라 일주일이면 바닥난다. 기관 운영비 중 인건비 안에 시간외수당 항목이 포함되지 않아 기관이 자체적으로 월 최대 15시간까지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가 지난해부터 경남도가 인건비를 예산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상담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한 예산 지원이 시작된 건 긍정적인 변화지만, 여전히 월평균 50시간 안팎의 초과근무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평균 이직률은 지난 2019년 기준 41%. 아동복지를 위한 사명감을 갖고 일에 뛰어든 상담사 10명 중 4명은 일이 힘들어 그만둔 것이다.

박미경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아동학대 현장에서 아동의 안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기 위해선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대응인력의 이탈은 지속적으로 사례관리를 받아야 하는 학대피해아동에게도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다”고 말했다.

◇취재 후기= 창녕 아동학대사건, 남해 아동학대 살해 사건 등 국민적 공분으로 사회적 눈길이 쏠릴 때마다 학대 방지대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학대 전담 공무원을 확충하고 공공성과 전문성을 늘려 아동학대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현장의 목소리, 특히 아동학대 업무 최전선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목소리는 정책에 잘 담기지 않는 모습이다. 한정된 예산 탓이겠지만, 상담원 한명 한명이 아동학대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공공자원’이란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날 두 상담원은 학대 가정을 접할 때 느낀 특징 한 가지를 꼽았다. 행위자 십중팔구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지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높은 업무 강도와 저임금,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지칠대로 지친 두 상담원이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처음엔 욕하고 학대를 일체 부인하던 분이 저희를 꾸준히 만난 뒤 ‘내 행동이 학대인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손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저로 인해 도움받았다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희망으로 매일 일합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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