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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이상권(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22-05-11 20:59:22

산천의 기운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하는 게 풍수지리설이다. 고려시대엔 국가와 왕실의 운명을 예언하는 도참사상과 결합해 성행했다. 청와대 터는 이때부터 길지로 주목받았다. 고려 숙종 9년(1104년) 완공된 남경(南京) 궁궐이 있던 자리로 추정한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활용했다. 900여 년간 권력자들이 거닌 ‘금단(禁斷)의 땅’이었다.

▼청와대 25만여㎡(7만7000평) 부지와 북악산 자락 입지는 대통령 권위의 상징으로 통했다. 한편으론 압도적 규모가 대통령을 민심으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지적도 받았다. 1992년 방한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과 맞바꾸자”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한다. 7만3000여㎡(2만2000평)의 백악관보다 3배 이상 넓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 청와대 공사 중 북악산 기슭 암벽에 새겨진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는 한자 글씨를 발견한다. 청와대 자리가 풍수지리상 명당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유형문화재인 ‘오운정(五雲亭)’ 근처다. ‘오운’은 곧 ‘다섯 색깔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구대로라면 청와대는 최고 명당에, 신선처럼 살 수 있는 별천지인 셈이다.

▼복된 땅이란 찬사가 무색하게 청와대를 거쳐 간 많은 대통령의 말로(末路)는 평탄치 않았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겼다. 권부의 상징이던 ‘청와대 시대’는 74년 영욕의 역사를 마감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천하제일복지’ 표지석을 보고 “천하제일복지 좋아하네. 대통령한테는 복지일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잘살아야 복지(福地)지”라고 했단다. 맹자에 ‘하늘의 때라는 것이 땅의 유리함만 못하고, 땅의 유리함도 사람들의 화합보다는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는 말이 있다. 나라 전체를 ‘천하제일복지’로 만드는 게 위정자의 책무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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