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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과학수사계의 대부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

악의 마음 읽는 ‘프로파일링’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기사입력 : 2022-05-25 21:40:28

1999년 서울경찰청 감식계장 시절

2년여간 연구 끝에 과학수사계 만들어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발탁


국내 1호 프로파일러(profiler·범죄심리분석 수사관)의 탄생은 지난 1999년 말 윤외출 서울경찰청 감식계장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1986~1991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부녀자들을 강간·살해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겪은 뒤 2000년대 사이코패스 성향의 연쇄 살인범들이 더 생겨날 수 있다고 판단해 과학 수사 조직을 만들고자 나선 것이다. 그런 윤외출의 손에 차출돼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가 된 권일용이 시대의 범죄자들의 심리를 해석하는 등 성과를 거두며 조직에 직제를 정착시켰다. 올해 초 이들을 실존모델로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방영돼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과학수사의 대부로 불리며,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을 맡고 있는 윤외출(56) 경무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윤외출 수사부장은 한국에 프로파일링이라는 분야를 도입한 한국 과학수사의 개척자이다./김승권 기자/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윤외출 수사부장은 한국에 프로파일링이라는 분야를 도입한 한국 과학수사의 개척자이다./김승권 기자/


작가·피디·기자 꿈꾸던 문학소년

가난에 발목 잡혀 경찰대학 진학

과학수사 권위자로 경무관까지 올라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실존인물

프로파일러 투입해 연쇄살인 전모 밝힌

20년 전 정남규 사건 가장 기억에 남아


지독히도 가난했다. 가난을 이기는 방법은 학업뿐이었던 시절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초등학교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특별활동은 ‘문학서클’만 할 정도로 문학 소년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셜록홈즈도 되고, 백마탄 왕자도 되고, 동경하고 원하는 모든 삶이 상상 속에 이루어지니까.

그런데 경찰이 됐다. 윤외출 수사부장은 자신의 학창 시절이 택시 기사인 부친의 경제활동에 6인 가족 생계가 달린 도시 빈민의 감당하기 힘든 가난을 겪으며, 4남매의 맏이로서 현실보단 이상세계를 동경하는 문학에 빠져들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장래 희망은 영문학이나 신문방송학을 전공해 프리랜서 작가나 피디,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가난에 발목이 잡혀 부친의 강권으로 학비 부담이 전혀 없는 경찰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가난했던 소년은 경찰이 된 후 올해 초 자신의 삶을 실존모델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며 인기를 누리게 됐다. 이후 젊은 경찰들도 드라마를 보고, 원작인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서적을 들고 수시로 사무실로 찾아온다. 그는 “드라마를 본 많은 지인과 경찰 동료들이 안부를 물어올 때 실감한다”라며 “드라마 촬영 전 주연배우들과의 미팅에서 김남길, 진선규 배우의 사인을 받아 아들딸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두 분이 저의 팬이라며 사인을 요청해 기분이 묘했다”라고 말했다.

때는 1990년대 후반. 우리사회의 살인·강도·강간·절도 등 범죄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서울시경 감식계로 발령받았다. 각종 사건을 마주하며 든 의문은 ‘일선 형사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사건들이 정체되고 미해결 사건이 늘어날까’라는 것이었다.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김승권 기자/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김승권 기자/

그는 “오롯이 국민의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민생치안의 불안으로, 경찰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시퍼런 비난으로 귀결되어 형사들을 아프게 두들겨 패던 시점이었다”고 회상했다.

“경찰 수사의 신뢰를 평가할 때마다 제기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왜 못 잡아 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느냐도 또 다른 큰 숙제였죠. 그래서 선진국들의 수사시스템과 비교해 살펴봤더니 우리에겐 형사만 있고 형사활동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수사지원시스템 즉 과학수사분야의 부존재가 큰 차이였죠. 당시 새로운 밀레니엄의 준비로 온 세상이 분주하던 시점, 우리 수사도 새로운 세상을 열 준비를 하자는 신념으로 2년여간 고민과 연구 끝에 2000년 서울시경에 과학수사계를 만들고 그 직제 안에 프로파일링 부서를 포함시켰습니다.”

그 결정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 실추된 경찰수사의 명예를 찾고 싶은 간절함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진화에 따른 사회현상의 부작용으로 미국과 같은 연쇄살인 등 범죄현상이 2000년대 이후 우리에도 다가올 위기감’이 공존해 있었다. 형사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프로파일러 양성에 대한 주장은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지만 확신이 있어 밀어붙였다.

윤 부장에게 20년 전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주범 정남규 검거 과정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희대의 살인마를 검거한 뒤 일선 경찰서에서 서울시경에 보고한 것은 단순 ‘강도 상해범’ 검거보고였다. 정남규가 ‘파이프렌치’로 20대 피해자를 가격해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피해자 부친과 격투 끝에 붙잡혀 형사과로 인계됐는데, 형사들은 연쇄살인범으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서울시경에서 범행도구의 특이점에 주목해 프로파일러를 투입, 면담한 후 단순 강도상해범이 아니란 조언으로 여죄 수사를 거쳐 연쇄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그는 또 “화성연쇄살인범을 밝혀내고 싶어 20년을 넘게 노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이춘재가 검거될 당시 저는 태평양 건너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파견되어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라며 “그래서 ‘인간은 준비하되 결정은 신이 한다’란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까지 올라섰다. 과학수사 분야의 권위자로 우뚝 선 것은 큰 업적이다.

다만, 아직은 윤 부장의 눈에 경찰의 장기 발전을 위한 숙제가 많이 보인다.

미래 프로파일러 영역의 준비를 위해 “발생한 범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이전의 단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강력 범죄로 심화되기 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며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으며, 새로운 갈등을 증폭시켜나가고 있는 범죄에 관한 통계학적 데이터를 만들어 프로파일링 접근을 통해 더 큰 범죄로 진화되는 걸 미리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김승권 기자/
윤외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김승권 기자/


“나의 좌우명은 ‘지금 당장 시작해라’

은퇴 후엔 자문 필요한 후배들 만나

멘토링하며 조용히 살고파”


조직의 역량 강화를 위해선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업무량 증가에 따른 인력과 예산의 지원이 실효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일부 수사기능과 수사관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사부서 기피의 심화 등 고단한 수사현실도 있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로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했다.

이어 “불구속 수사 원칙 천명으로 인권 보장의 기본적 수사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수사경찰 계급제 변화 도모, 수사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정비, 시기·지역별 맞춤형 수사조직 운영, 수사경찰의 독립성·전문성 제고, 도경찰청 고도의 죄종별 전문수사·수사지원시스템 구축을 통한 미래 범죄에 대해 예측·진단·대비하는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찰 후배들에겐 “경찰수사의 미래는 전문능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청년 경찰들도 가장 적성에 맞고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최고전문가가 되든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선도자가 되든지 용기 있는 선택의 길을 찾아 모험적인 도전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라며 “자존감있는 경찰 삶을 살고 싶다면 전문능력을 키우는 것이 열쇠다. 저의 경찰인생 좌우명, ‘지금 당장 시작해라(just begin, here and now)’를 전해주고 싶다”고 조언했다.

그의 은퇴 이후 삶은 어떨까. “경찰로 살아가며 업무나 조직문화 고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상담과 경험 자문이 필요해 찾아오는 후배들과 수다 떨며 차 한 잔하며 코칭, 멘토링, 컨설팅하는 조용한 삶이 개인적 목표이지만, 아내는 연금으로 부족하다며 70세까지 소득을 전제로 노동일선에서 일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합의는 요원할 것 같습니다.”

윤외출 수사부장은 창녕 출신으로 마산고를 나와 1987년 경찰대학을 3기로 졸업했으며,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장과 강력계장, 경남청 남해경찰서장, 경찰청 수사연구관실장, 서울청 동작경찰서장, 경찰청 외사기획과장, 전북청 수사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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