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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기념하는 일-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기사입력 : 2022-06-13 20:28:22

오월과 유월은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해야 할 날들이 많은 달이다. 계절도 좋아서 의식을 치르기에도 금상첨화다. 거창하게 국가기념일만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관혼상제나 희로애락과 관련해 다양하게 기념할만한 일들을 하고 산다. 이런 일에 능숙하면 비뚤어진 일도 바룰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경우 없는 사람이 되거나 중요한 일을 그르치게도 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치러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만 보더라도 아직은 정치적 행위로 보아 진정성에 거리를 두는 시각도 많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으로 불러야 한다”, “합창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도의 한심한 논쟁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일단 기념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진일보했다고 보아진다.

‘통영국제음악제’는 2002년 윤이상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고자 시작됐다. 이 일을 총괄하는 곳이 내가 일하고 있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인데, 2003년 경상남도의 요청으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라는 행사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됐고, 지금까지 이 둘은 우리 재단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음악제는 말 그대로 축제이고 콩쿠르는 경연대회이지만 실제 그 내면에는 윤이상이라는 인물 콘텐츠가 녹아 있다. 달리 말하자면 윤이상이라는 인물을 기념하는 행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초창기 윤이상이라는 인물을 단순하게 조명만 하는 평면적인 행사로 기획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 박제된 윤이상은 매년 그의 생일이나 타계일 정도에 맞춰 영혼 없는 기념사만 난무하는 행사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잘 알다시피 윤이상은 정치적인 이유로 아직도 진영 간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를 기념하는 일은 갈등만 양산하는 소모전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통영국제음악제가 원래 윤이상음악제였는데 보수정권의 압력에 의해 통영국제음악제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사나 기고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이 아니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음악제나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음악제 등을 보더라도 축제는 도시 이름을 따는 것이 국제적인 표준이다. 쇼팽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콩쿠르, 차이코프스키콩쿠르 등에서 보듯이 콩쿠르는 유명 음악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인 것처럼.

물론 아시아권에는 하마마츠콩쿠르, 센다이콩쿠르, 베이징콩쿠르 같이 도시 명을 붙이는 콩쿠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세계적인 인물을 보유하지 못해 차선으로 도시 이름으로 갈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돼 있는 메이저 콩쿠르 중에 사람 이름을 딴 아시아의 콩쿠르는 윤이상콩쿠르가 유일하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윤이상콩쿠르는 그의 타계일인 11월 3일을 끼워 10일간 진행된다. 선생의 기일에 맞춰 통영에선 오랫동안 추모제를 지내는 예술단체가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추모제 이상으로 콩쿠르 결선을 관람하고 그의 예술혼을 이어갈 차세대 음악인들을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모인 유망주들이 윤이상의 곡을 연주하고 그의 음악 세계와 교감하게 하는 것이 윤이상을 진심으로 기념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기념하는 일에는 명분만큼 방향과 원칙이 중요하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경남의 상당수 지자체 수장이 새롭게 바뀌었다.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변화를 가지고 싶을 때다. 차제에 각 지역마다 무엇인가를 기념하고자 하는 일들도 많을 텐데 제발 이름만 바꿔 놓은 관광지의 기념품 같은 모습은 지양하기를 바란다. 이제 기념하는 일들도 창의적이고 세련됐으면 좋겠다.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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