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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⑨ 경남도 무형문화재 소목장 김동귀

전통가구의 아름다운 멋, 현대적 감각으로 잇다

기사입력 : 2022-06-29 21:47:00

가구 짜던 소목장으로 지낸 외가 보며 자라
50여년 나무 만지며 전통가구 재현하고
현대 접목한 기법 연구·소재 개발 몰두


옛것 어루만져 새것 만드는 ‘무고창신’ 고수
직접 개발한 색동목 기법으로 작품 만들어
전통 목공예 우수성 국내외에 알리고
목가구 대중화·색동목 소재 실용화 연구도


전통예술도 현시대 맞게 발전할 때 빛나
환경 조화 이루며 자연 닮아가려 노력
나무와 함께한 인생 힘들었지만 행복
이제 전통 잇는 후학들 돕고 싶어


소목장은 대목장이 지은 집과 궁궐, 사찰 등의 내실에 사용하는 가구와 창호 등을 제작하는 장인, 즉 목수를 말한다. 경남지역은 지리산의 풍부한 산림과 임진왜란 당시 통제영에 설치되었던 12공방의 영향으로 진주와 통영 등지에서 전통공예가 다양하게 전승됐다. 주거와 생활패턴의 급격한 변화로 화려했던 전통가구의 명성은 점점 쇠락해가고 있지만 전통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롯이 지키겠다는 장인정신으로 그 맥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경남에는 정진호(2004년 지정), 김동귀(2012년 지정), 조복래(2016년 지정) 등 세 명이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저마다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지면에는 목상감 기법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김동귀 소목장을 만나 그의 50년 목수인생과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김동귀 소목장이 주칠 하도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동귀 소목장이 주칠 하도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는 수분이 빠지면서 나이테가 치밀하고 아름다워져요. 나무가 생을 이어오면서 잎, 열매, 꽃은 계절에 따라 바뀌고 사라지지만, 아름다운 속살은 거친 껍질 속에서 오랜 시간 눈 밝은 목수의 손길을 기다리죠. 생명의 수레바퀴인 나이테와 오랜 세월을 쟁여두었던 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어루만지고, 또 그것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목수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경남 무형문화재 29호 소목장이자 목상감 명인으로 50년을 나무와 함께해온 김동귀 보유자. 전통가구와 현대 목공디자인의 창조적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그는 정년퇴직(전 경남과기대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교수)을 하고 나서도 나무 앞에 서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는 수줍은 청년이다. 그의 작품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진주 진양호 우드랜드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 잡아본 그의 손은 말 그대로 나무손(木手)이었다. 손 이곳저곳 상처와 굳은살이 박혀 마치 나무등걸을 닮았다. 그 인고의 손으로 어루만진 나무들이 다시 새생명을 얻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목가구 전시장 풍경은 찬란한 고요로 넘쳐났다. 반닫이와 장롱, 다탁장, 식탁, 의자, 장식장 등 작품들은 각양각색 숲을 이루었다. 어떤 받닫이는 새악시처럼 고즈넉이 앉아 있고, 어떤 경상은 선비처럼 단아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고, 어떤 장농은 농염한 아낙처럼 조명 빛을 일렁이게 했다.

“좋은 나무는 쉬 갈라지지 않고 고유의 문양, 즉 나뭇결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요. 쓸 만한 재목은 보통 400~500년은 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나무 구하기가 어려워요. 재료가 고갈됐다면, 환경에 맞는 재료와 기법을 개발해야죠. 문갑, 사방탁자, 반닫이 같은 세간도 한옥 구조 때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고요.”

먹감나무 진주반닫이
먹감나무 진주반닫이
撫古(목상감)
撫古(목상감)
愛舞(애무)
愛舞(애무)

나무 잡은 지 50여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샌가 나무 전체가 보이고,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그. 그래서 요즘 전통가구를 재현하는 틈틈이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기법 연구와 소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단다. 옛것을 어루만져 새것을 창조한다는 그만의 무고창신(撫古創新) 철학을 고수해온 터. 목재도 다양한 작업과 소재 개발을 통해 산업에 접목하면 얼마든지 플라스틱보다 더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그는 자신이 개발한 목상감기법의 색동목 작품을 설명할 땐 눈빛이 영롱해졌다.

“초기 작품은 은행나무, 먹감나무, 소태나무 등을 이용해 1차 집성문양 회장을 부착했어요. 지금은 원목의 질감을 살려 염색집석목(색동목)을 이용해 4차 집성문양 회장을 전통가구의 표면 문양에 입힙니다. 색동목은 제가 개발한 기법인데요. 나무에 열과 습도를 주어 곡선으로 만든 뒤 원하는 단면 모양이 나오도록 잘라 자연스러운 나이테 모양을 뽑고, 각각 다른 색상의 패턴을 넣어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한국의 전통 오방색인 흑, 백, 청, 적, 황의 기본색을 염색해 4차례 집성과정을 통해 만들지요.”

색동목 머릿장
색동목 머릿장
색동목 곡목의자
색동목 곡목의자
색동목 샘플
색동목 샘플

가구를 만드는 일은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좋은 가구를 두고 ‘음양(陰陽)의 화합’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재질의 목재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데, 완벽한 한 몸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 그는 목공예란 나무를 볼 줄 아는 눈과 목재를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기술력의 합작이라고 말한다. 전통예술도 현시대에 맞게 발전할 때 빛나는 것이고, 그런 ‘쓸모 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목공예품은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실용성과 조형미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자연을 닮아 가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가구의 형태도 회화나 조각처럼 배치되는 공간에 구애받지 않도록 심미성과 조형성을 살려야 하고요. 가구의 경직성에 부드러움을 더하는 작업, 가구 하나 하나가 회화처럼 보이도록 늘 고민합니다”

김동귀 소목장
김동귀 소목장

그는 우리 전통 목공예 우수성을 알리는 개인전을 독일, 브라질,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17회나 가졌다. 지금도 국내외 초대전에 상감기법을 이용한 목가구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특히 상감기술은 정교하고 작업이 복잡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그의 손끝에서 새롭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상감문양과 상감용 재료의 개발, 색동목을 활용한 목가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자신의 색동목 소재가 자동차 내장재나 호텔의 상드리에 조명등에 쓰일 경우 아주 상품성이 높다고 보고 실용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지리산 자락에 서식하는 곤충을 주제로 출품한 ‘지리산의 신비’가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강 주변에 나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낙랑고분 채화칠 기법을 현대 공예에 접목한 ‘남태 칠 기법을 이용한 생활용품’이 통산산업부 장관상을 받을 만큼 기술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르익은 상태. 기술에서 예술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결정적으로 전통한옥의 형태를 목가구의 구조와 결합해 제작한 ‘산사의 아침’이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서 대상을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는 나무와 함께한 50년 인생이 힘들었지만 말할 수 없이 행복했노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통을 이어가는 후학들을 돕는데 일생을 바칠 각오를 밝혔다.

산사의 아침
산사의 아침

“가구 짜던 소목장으로 평생을 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의 세월을 곁에서 보며 자랐으니, 어쩌면 저는 처음부터 나무를 만지며 살아갈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단청 문양을 찾아 전국 사찰을 헤맸고, 골동품 가게를 이 잡듯 뒤졌죠. 기술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외삼촌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요. 그러고도 한계가 느껴져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목칠공예를 공부했습니다. 제가 한창 목상감을 연구할 땐,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지요. 이제는 선험자로서 후배들이 시행착오 없이 전통을 계승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김 우 태 시인
김우태 시인

김우태(시인)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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