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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에너지로 탄소중립 완성을] (4) 해외 사례-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파리시청의 열기 ‘센강’이 식힌다

기사입력 : 2022-07-06 21:07:57

느지막이 어둑해지는 여름밤, 강변 따라 하나둘 노랗게 빛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걸터앉아 와인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과 때에 맞춰 제 몸을 반짝이는 에펠탑까지. 유월 초 프랑스 파리 도심을 관통하는 센강에는 낭만이 절로 흘렀다.

그러나 센강은 낭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센(Seine)강은 1900년 이후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파리 도심에 냉방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하천수의 냉기를 이용해 전력을 아끼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수열에너지 시스템이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최근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네덜란드 등 화석연료를 줄이기로 했던 유럽국가들이 한시적으로 석탄발전을 재개한 것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함을 반증하는 가운데, 파리는 센강을 이용한 ‘지역 냉각 시스템(DCS)’의 확대를 해결책 중 하나로 보고 있다. UN의 모든 국가가 각자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의 무게를 지키기 위한 파리의 노력이다.

지난 6월 1일 오후 10시께 프랑스 파리 퐁 로얄 다리 위에서 찍은 센강의 모습. 센강은 파리시민에게 냉방에너지를 제공하는 주요 열원이기도 하다.
지난 6월 1일 오후 10시께 프랑스 파리 퐁 로얄 다리 위에서 찍은 센강의 모습. 센강은 파리시민에게 냉방에너지를 제공하는 주요 열원이기도 하다.

◇ 센강과 파리 지역 냉방 네트워크(DCS)= “루브르 박물관, 오페라 가르니에, 라파예트 백화점, 파리 시청·의회까지 전부 센강 수열에너지로 냉방을 한다고요?”

파리 관광객이라면 꼭 한 번쯤 들리는 파리의 대표적 건물들과 주요 공공기관들은 여름철 센강물 덕에 시원해진다. 건물 개별적 냉방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센강 하천수를 주요 열원으로 삼아 지역 단위로 묶인 냉방 네트워크를 갖춰 냉기를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파리 지역 냉방 시스템(District Cooling System, 이하 DCS)’라 불린다. 지난 1991년 파리 샤틀레 역 근처 한 건물(고객)의 요청으로 끄림에스파스(Climespace)가 진행한 이 사업은 이제 파리 공공 냉방 서비스로 자리잡아 2022년 기준 738곳의 파리 시내 건물을 냉방한다.

30여년간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DCS가 탈탄소 방안·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여겨지면서 파리는 올해부터 DCS 규모를 3배로 늘리는 계획에 착수했다. 2021년까지 엔지(Engie)의 자회사인 끄림에스파스(Climespace)가 운영을 맡았던 이 네트워크는 공모를 거쳐 올해 4월 5일부터 ‘프레셔 드 파리(Fraicheur de Paris)’가 20년간 새로이 운영을 도맡는다. 엔지(Engie·85%)와 RATP그룹(15%)의 공동소유 회사인 프레셔 드 파리는 냉방 네트워크를 158㎞까지 확장하고 열 생산 플랜트도 현재 10개에서 30개로, 저장 시설을 4개에서 14개로 늘려 모든 지역의 새로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파리 DCS 작동 원리와 성과= 파리 DCS는 센강의 1~5.5℃ 물을 끌어다 열교환을 통한 냉기로 지역 네트워크에 연결된 건축물에 냉방에너지를 전달하고, 건물을 식힌 뒤 온도가 오른 물을 다시 냉각시켜 강으로 돌려보낸다. 보통 냉각에는 냉매를 차갑게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 ‘칠러(Chiller)’가 필요한데, 센강의 시원한 물은 칠러 사용을 크게 줄여 전력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1년 내내 직접적인 센강물의 냉기로 DCS 열 생산 설비들을 자연냉각하는 ‘프리 쿨링(Free Cooling)’을 함으로써 에너지 효율도 한층 높인다. 또한 DCS는 냉방 수요가 적은 밤 시간대 냉각장치를 가동해 냉방에너지를 물 또는 얼음 두 가지 형태로 축적해놓은 뒤 냉방 수요가 최대치에 달하는 낮에 냉방 에너지를 공급해 낮동안 급증하는 수요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DCS는 일반 독립형 냉방 설비와 비교해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전력소비를 줄이고, 냉매 배출량은 90%가량 줄인다. 또한 화학물질 사용량과 CO2 배출량을 절반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생 드니 지역 증발식 냉각 설비에서 Engie사 자말 투아티씨와 냉기를 직접 감지하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생 드니 지역 증발식 냉각 설비에서 Engie사 자말 투아티씨와 냉기를 직접 감지하고 있다.

◇ 파리기후협정과 수열에너지= 지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Agreement)’가 채택됐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모든 국가가 2020년부터 기후행동에 참여하고, 5년 주기로 이행 점검을 통해 노력을 강화하도록 규정했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던 기존 교토의정서를 넘어 자국 상황을 반영해 모든 국가가 참여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이 때문에 파리는 자국의 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DCS 이외에도 지열·수열을 사용한 신재생에너지로 2년 앞으로 다가온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열릴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 냉방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나 이 근처에 지어질 파리올림픽 선수촌에도 대수층 지열·수열 에너지를 사용해 전체 전력 사용량의 70% 정도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며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부합하는 최초의 대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열·수열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을 할 2024파리올림픽 선수촌 조감도./SOLIDEO/
지열·수열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을 할 2024파리올림픽 선수촌 조감도./SOLIDEO/


2024 파리올림픽 인프라 구축 담당 솔리데오“기후변화 대응 모델될 친환경 파리올림픽 선수촌 만들 것”

“선수촌 건물만 덩그러니 짓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유산(헤리티지)으로 남을 수 있는 친환경 마을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파리올림픽위원회가 출범하며 꾸려진 ‘솔리데오(Solideo)’는 올림픽 선수촌 등 2024 파리올림픽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자금을 투자하는 회사다. 솔리데오 환경성과 분야 총괄 책임자 릴리안 트레투(Lilian Tretout)씨는 인터뷰에서 탄소중립을 목적으로 만드는 이 마을(도시)가 2030년까지 유럽의 기후변화 대응 도시 모델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솔리데오 총괄 책임자 릴리안 트레투씨가 파리올림픽 선수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솔리데오 총괄 책임자 릴리안 트레투씨가 파리올림픽 선수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파리올림픽의 환경 목표는.

△탄소중립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을 지향한다. 2024파리올림픽을 파리 협정에 부합하는(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이는) 최초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선수촌은 어떻게 지어지나.

파리 북부의 생 드니(Saint-Denis), 생 뚜앙(Saint-Quen) 지역에 올림픽 선수촌을 짓고 있다. 1만5000명 선수와 스태프들이 올림픽 기간에 사용하고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소방서 등 공공시설을 갖춰 향후 2025년부터 2050년까지 6000명의 주민과 6000명의 직장인이 생활하는 마을로 남게끔 52만㎡ 규모의 한 마을(도시)을 짓고 있다. 2023년 완공 예정이다.

-선수촌의 냉난방 시스템은?

프랑스 기상청과 관련 시뮬레이션을 수행해본 결과 2050년까지 주민들이 거주하는 측면에서도, 올림픽 기간에 선수들이 더 밀집해 있는 부분을 고려해서도 지금보다 냉방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100m 깊이의 우물 11개를 파내 대수층(지하수층)의 지열·수열을 활용해 신재생에너지로 냉난방 에너지를 대부분 조달할 계획이어서 현재 건물 건립과 냉난방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를 갖나.

최대한 자연 에너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건물 방향도 조정하며 설계했기에 이번 프로젝트 건축물들은 기존 경기장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절반 이상 줄이는 등 많은 기술을 적용했다.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한 모델 도시 제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올림픽 개최 시기가 다가오면 더 많은 국가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이런 것이 올림픽 이점 아니겠나.


[인터뷰] 올리비아 하클 엔지社 냉난방 총괄

“파리 ‘지역 냉방 시스템’ 전세계 친환경 에너지로 적용 가능”

올리비아 하클 엔지社 냉난방 총괄
올리비아 하클 엔지社 냉난방 총괄

-기후위기로 DCS 도입 문의가 늘었나.

△기후위기도 기후위기지만 사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 때문에 이 냉난방 네트워크 도입이 더욱 필요해졌다.

며칠 전 유럽연합 집행위가 오는 2027년까지 러시아 에너지로부터 완전한 자립을 도모하자는 내용의 ‘REPowerEU’를 발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러시아 화석연료 자원에 대한 의존성도 줄이고, 탄소배출도 줄이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빠른 해결책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도입 문의가 오고 있으며, 테스트 단계에 들어선 방안들도 많아 바빠졌다.

-운영상 특별히 유의하는 점이 있었다면.

△우리는 센강물을 냉방에 사용한 다음 다시 센강으로 방출하기 때문에 센강의 환경에 악영향을 미쳐선 안된다. 자원환경의 생물 다양성을 그대로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유입된 물과 방출하는 물 온도 차이를 5℃도 내외로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기후위기 상황서 DCS가 에너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DCS는 전세계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전세계가 뜨거워지면 점점 개인 냉방기구를 쓰게 되는데 배출한 열이 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면서 악영향을 끼친다.

싱가포르의 경우 실내외 기온차가 15도 이상 나는 곳도 있어 열섬현상이 심각한데 파리 DCS는 냉각탑이 없어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로 친환경에너지라 볼 수 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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